부산 지역 재래시장의 형제자매들을 찾아 돌보는 「시장 사목」 소임으로 발령받고 일한 지도 1년이 되었다. 이제 막 개척되고 있는 분야라 힘겨운 점도 많지만, 사목자로서 참으로 큰 은혜를 체험하고 있다.
상인 형제자매들의 복음화를 위해 발로 뛰어 다니며 날이 갈수록 절실히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들을 복음화 시킨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나를 복음화 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깜짝 놀랄만큼 열악한 상황에서도 신앙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이들 안에 계신 가난한 예수님의 현존은, 슬며시 타성에 젖어가는 나를 부끄럽게 하고, 일깨우시고, 큰 기쁨과 열정으로 다시 채워주심을 체험하는 것이다.
점점 열악해지는 우리 재래시장의 현실은 나로 하여금 깊은 무력감과 한계를 느끼게도 한다. 물론 이런 상황의 근본 원인은 구조적인 데 있을 것이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 현상과 함께, 거대 자본을 앞세운 대형 매장들이 앞다투어 등장하면서 시장을 장악하게 됨에 따라 재래시장은 점점 그 설 곳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한마디로 재래시장 상인들은 그 많던 손님들을 거의 다 잃어버린 상황이다. 어느 날인가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재래시장의 이런 상황이 어쩌면 현재 우리 교회의 상황과도 유사한데가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사실 우리 교회 역시 한 때 호객 행위를 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호황」을 누렸지만, 언제부턴가 그 「손님」들의 수도 훨씬 줄고 「단골」마저 다른 곳으로 빼앗긴다는 느낌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실정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사회 정치적 구조나 세태에만 탓을 돌리는 것은 문제 해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상황의 원인을 우리로서는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날 나는 그 중요한 원인 중 하나를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이 하셨다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상인들에게는 손님이 하느님이다. 그들이 상인들을 먹여 살려 준다. 그 하느님만 잘 섬기면 밥 굶을 염려는 안해도 된다』고 하셨다는 말씀이다.
우리 신앙의 관점으로 보아 참으로 맞는 말씀이거니와, 이것은 상인들 뿐 아니라 우리 교회에도 대체로 해당되는 말씀이 아닐까 한다.
우리 성직자들이 신자들 안에서 하느님을 뵙고 지성으로 섬긴다면, 그리고 우리 평신도들 역시 만나는 모든 이웃들 안에서 하느님을 뵙고 지성으로 섬긴다면, 교회의 신자 감소나 성소 감소 현상에 그리 염려할 필요가 없게 되지 않을까. 상인들은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하느님으로 섬기고, 교회 역시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하느님으로 섬길 때, 그런 상인과 교회야말로 사실 참 하느님의 모습일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점에 있어서 「프로」이셨다고 믿는다. 바로 이 하느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먹여 살려 주실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지 않은가 싶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