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비록 삶의 규칙을 글로 기록하여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는 은수자들의 큰 모범이자 표본이었다. 그는 사랑속에서 진보할 수 있는 방법,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에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17세기 말경 동 인노쌍 러 마쏭 (Don Innocent Le Masson)이 지칭한 「그」는 카르투시오(Carthusians) 수도회를 설립한 「브루노」(1032?∼1101)를 칭한다.
「한 번도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도 개혁한 적이 없는 수도원」을 창설했다는 영예를 지니고 있는 브루노. 독일어권에서 수도회를 창설한 몇 안되는 사람중 하나인 브루노는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한 엄격한 기도와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물로서 오늘날까지도 수도자들은 물론 많은 신자들에게 큰 영향을 남기고 있다.
카르투시오 수도회 회칙 첫 부분은 브루노가 지니고 있었던 침묵과 관상의 가치를 잘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사람들을 선택하여 이들로 하여금 고요함으로 물러나서 당신과의 일치속에 내적인 사랑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도록 하셨다. 「여러분의 참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습니다」(골로 3, 3)』
『한적하고 고요한 장소에서 고독과 침묵속에 생활하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큰 기쁨을 누리게 한다. 오직 이것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이러한 사실을 안다. 카르투시오 회원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이러한 생활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고요한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자신의 가족들을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오직 하느님 만을 위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활동적인 것과 관상적인 것을 조화시킨 과제를 교회안에서 수행해 나가는 것이다』
그의 성장 배경은 1032년경 독일 쾰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비교적 좋은 교육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쾰른의 성 구니베르토 학교를 거쳐 프랑스의 랭스 주교좌 성당 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쾰른에서 사제품을 받은 그는 랭스의 학교에서 문법학과 신학을 가르치며 18년 정도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가 가르친 학생들중에는 후에 교황 우르바노 2세가 된 외드(Eudes de Chatillon) 등이 포함돼 있었다.
교황과 황제들의 반목, 성직매매등 성직자들의 비도덕한 생활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상황속에서 브루노는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개혁 운동을 적극 지지하면서 교회 쇄신에도 앞장섰다.
브루노의 수도회 설립과 은수생활은 이러한 환경과도 무관치 않다고 할 수 있다. 1067년 성직 매매로 마나세(Manasses de Gournay)가 랭스의 대주교로 임명된 것과 관련 브루노는 이에대한 비판과정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껴 쾰른으로 피신하는 일등을 겪어야 했다. 그는 마나세가 파면된 후 다시 랭스로 돌아왔으나 새 대주교 제안을 물리치고 수도생활을 위해 길을 떠났다.
사막 교부들이 일정기간 동안 완전히 혼자서 생활하는 것을 택했던 것과 달리 브루노는 소공동체를 만들어 제한된 범위의 공동 생활을 하며 서로 영적 동반을 해주는 삶을 동경했던 것 같다.
2명의 동료와 함께 그레노블 주교 샤토뇌프의 성 위고가 제공한 샤르트뢰즈에 자리잡은 브루노는 해발 1067m에 위치한 이곳에서 6년여 동안 기도 묵상 노동을 하며 청빈을 지키는 엄격한 침묵 생활을 해나갔다.
카르투시오 수도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들은 이집트와 팔레스티나 초기 수도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고독과 청빈 금욕이 강조되는 은수 생활을 했다.
이런 가운데 브루노는 교황 우르바노 2세의 부름을 받고 로마로 향하게 된다. 어려운 교회 상황에 대해 교황은 브루노에게 자문을 청했고 그는 교황의 명에 순명, 고문 역할을 하며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되지 않아 교황은 그를 레조의 대주교로 임명하려 했으나 브루노는 그 청을 거절하고 다시 은수생활을 택했다. 제자들과 함께 칼라브리아에 정착한 그는 샤르트뢰즈에서와 같은 수도 생활을 시작했는데 시실리아 영주 로제 백작이 그러한 생활에 감명을 받고 라 토레(La Torre) 땅을 기증, 여기서 「라 토레의 성마리아」라는 은수처를 설립했다. 1101년 교황 파스칼 2세로부터 수도회 생활방식을 인가받았던 브루노는 그러나 그 이듬해 선종했다.
사망후 공식적으로 시성되지는 않았지만 1514년 교황 레오 10세는 구두로 브루노를 성인 반열에 올리고 카르투시오회 내에서 공경 예절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1623년에는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축일이 10월 6일로 정해졌다.
설교집 서간 신앙 고백서 등 그가 남긴 작품들은 동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동적으로 묘사하는 시적 감정이 풍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영성적 의미와 문학적 의미가 함께 내포된 것으로 남겨지고 있다.
학자들은 『그의 저술들이 널리 퍼져나가지는 못했다 해도 수도회를 창설한 카리스마는 그리스도를 따라 삶을 봉헌하고자 하는 영적 아들들이 섬세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데 큰 힘을 주었다』고 평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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