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사목의 정신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찾아가는 교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하늘 높은 데 계시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로 올라오라고 부르시는 분이라기보다는, 『하늘을 기울이사』 몸소 땅으로 내려오셔서 사람들 가운데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잃어버린 이들을 찾아다니시느라 몸과 마음을 남김없이 소진하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그런 분의 제자인 교회 역시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성당에 오고 싶어도 직업상 올 수가 없을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본당 사목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시장 상인들이야말로 바로 그런 형제자매들이다.
그런데 이분들을 찾아다니는 나와 우리 시장사목 임원들 역시 장돌뱅이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거의 매일 그야말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발품을 팔아야 한다.
부산 전체에 흩어진 우리 상인들의 점포가 700여개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찾아가는 교회」라는 말은 아름답고 고귀하지만 정작 그 실천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특히 한 여름에는 속옷 보따리를 따로 챙겨 들어야만 한다. 시장의 형제자매들과 마음을 같이 하기도 처음부터 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어느 장터에서 첫 미사를 바치던 날, 『이상한 신부가 이상한 장소에서 불법적으로 미사를 드리고 있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
또 근처에 시장을 끼고 있는 한 본당에서, 다 준비된 미사를 드리지 못하고 만 적도 있었다. 친목 위주의 본당 상우회 모임이 시장사목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갈등이 극복되어 함께 잘 협력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날 저녁이면 나와 임원들은 자갈치 시장 한 귀퉁이 대포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시장사목이 정녕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깊이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 우리가 도달하는 결론은 언제나 한결같다. 예수님처럼 바닥으로 바닥으로 자꾸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끝없이. 그리고 그 바닥에서 기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신을 함께 다지려고 그 즈음 우리는 국제시장 화장실 청소를 한달 가량 자청하여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경찰관이 화장실로 찾아와 조사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기기도 했다.
마침 여자 화장실 쪽을 청소하던 순간이었는데, 멀쩡한 남자들이 시키지도 않은 여자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다고 이상하게 여긴 누군가가 신고를 했던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경찰관도 교우여서, 우리는 함께 한바탕 신나게 웃고 말았다. 시장통 화장실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고무장갑을 끼고 냄새나는 화장실 변기를 청소하면서, 온갖 인생 장터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을 찾아 이 골목 저 골목 다니시던 우리 주님의 마음을 조금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바로 그 낮은 마음을 늘 잃지 않게 해달라고 청하며 장돌뱅이는 오늘도 운동화 끈을 조여 맨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