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그동안 「가정」과 「생명」의 문제가 단순히 교회 내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하게 고려돼야하는 핵심문제라는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주교단이 공동으로 발표한 가정을 위한 교서 「가정, 사랑과 생명의 터전」은 이러한 인식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의 하나로 나타난 결실이다.
배경과 취지
이혼과 저출산, 동거와 독신선호, 고령화, 동성애를 비롯해 자살, 가정폭력과 청소년의 일탈 등 각종 가정문제가 급증하는 현 세태는 총체적인 가정 위기의 경종을 울리며 가정과 생명을 살리는 시대적 관심과 응답을 요청해 왔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각 교구별로 가정사목 관련 교서를 내고 가정복음화를 위한 각종 지원과 교육을 전개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펼쳐왔다. 지난 8월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제8차 정기총회에서는 아시아 가정의 현황과 사목과제를 짚어보고 가정사목에 매진할 뜻을 다졌다.
이러한 노력 과정과 함께 주교단은 올해 춘계정기총회에서 공동가정교서를 내자는 데 직접적인 의견을 모았다.
특히 한국 주교단은 『한국의 가정문제가 매우 심각하며 가정문제의 해결 없이는 한국의 미래도 없다』는 절박한 인식 아래 『한국의 가정현실을 교회의 가르침으로 조명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이번 교서를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주교단은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며 지난 97년 공동사목교서를 낸 이후 대사회 문제에 대해 주교단 명의의 담화문 등을 발표한 바 있지만 한국 주교단이 공동으로 「교서」를 발표한 것도 이례적인 일로 가정 복음화를 적극 구현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개요
총 3장 83항으로 구성된 교서는 제1장에서 「참 가정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가장 먼저 제시한다. 「가정의 영성과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으로는 ▲생명을 존중하는 공동체 ▲신앙을 전수하고 전달하는 공동체 ▲대화하는 공동체 ▲복음을 믿고 삶으로써 선포하는 공동체 ▲죽음을 아름답게 맞이하는 공동체라고 밝히고 있다.
2장 「무너져가는 우리나라의 가정」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가정들이 처한 현실과 근본적인 문제를 분석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 분석과 설명은 교회 내 시각 뿐 아니라 대사회적이고 가정의학적인 자료와 정부의 통계 등을 활용해 객관성을 부여했다.
이어 3장 「사목적 대안」에서는 「바른 가정교육」과 「사목적 배려」로 나눠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바른 가정교육」 부문에서는 조기 가정교육을 강조하고 있으며, 「사목적 배려」 부문에서는 「가정사목」이 사목의 일부분이나 특정 사목의 하부구조가 아니라 모든 교회사목의 중심이자 토대로, 「가정」이 교회활동을 통합하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재확인한다.
특히 교서에서는 『성체성사를 통해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교회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성가정』이라며 『성체로 힘을 얻는 그리스도인 가정은 「사랑의 문화」를 중심으로 더욱 풍요한 인간성을 길러내는 학교, 사회적 덕행을 가르치는 최초의 학교로 거듭나야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과제와 전망
이번 교서 발표에 따라 전국 각 교구에서는 성직·수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서내용 교육에 이어 신자교육을 실시하고, 개별교구와 본당 상황에 맞춰 교서내용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예정이다.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도 전국 각 교구 가정사목 전담사제 모임과 네트워크를 강화해 21세기 한국교회 가정사목의 전체적인 틀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정보공유를 이뤄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교서 내용들이 실제 삶 속에서 적극 구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 개인과 가정 스스로가 복음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에 나서야 할 것이다. 가정사목의 주체이자 대상은 바로 각 개별가정이기 때문이다. 각 가정의 복음화가 이뤄질 때 가정을 통한 지역사회의 복음화도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교서의 내용들이 각 신자 가정에 올바로 전달될 수 있는 방안 모색과 각종 교육·체험프로그램 개발 운영 및 전문가 양성을 위한 전문기관의 설립도 요청된다.
또한 사제나 학자들은 물론 교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부부나 가정 단위에서부터 교서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임 등이 마련된다면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더욱 효과적인 실천이 가능할 것이다.
◆ 가정교서 발표 주교회의 의장 최창무 대주교
“부부의 삶은 곧 성사적 삶”
『혼인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자 「거룩한 일」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전례력으로 새롭게 한해를 시작하는 대림시기를 맞아 한국 주교단이 가정교서 「가정, 사랑과 생명의 터전」을 발표했다.
주교회의 의장 최창무 대주교는 가정의 위기가 거론되는 오늘 우리 시대가 오히려 구원의 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무리 큰 역경일지라도 그것은 오히려 구원의 길에 함께 나서자는 초대의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가 딛고 선 바로 그 자리에 구원의 길이 있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최대주교는 오늘 한국 사회가 직면한 낙태, 노령화, 저출산 등의 현실을 「자승자박」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번 교서가 정책, 경제적 이유로 생명을 박탈해온 우리 사회와 교회에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교서는 우리 사회에 가정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전하려는 교회의 응답입니다. 가정의 신성성과 숭고함을 해치는 원인을 돌아보고 함께 극복해나가려는 노력을 담고 있습니다』
최대주교는 『부부의 상호 유대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성사적 징표』라고 설명하고 특별히 「성체성사의 해」와 관련해 『혼인성사와 성체성사는 하느님의 백성을 살리고 키운다는 점에서 상통된다』고 말했다.
혼인성사는 성체성사 안에서 새로워지고 완성된다고 지적한 최대주교는 그리스도교적 친교를 바탕으로 모든 신자들이 각자 십자가를 지고 나갈 수 있는 힘을 키우고, 부부 등 가장 작은 단위에서부터 교서에 대한 연구 등 구체적인 실천 노력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최대주교는 『성숙한 평신도는 가정 생활 안에서 삶의 근원적 물음들을 가져올 줄 알아야 한다』며 『가정생활을 통한 고뇌와 환희, 고통이 모두 성사성을 지니며, 부부의 삶은 참으로 「성사」』라고 강조했다.
『교서는 사회에 대한 초대이자 신자들에게는 격려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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