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소아암(백혈병) 병동을 운영하고 있는 가톨릭대 성모병원을 찾아 백혈병어린이들과 가족들을 만나봅니다.
가톨릭대 성모병원 11층 서 병동. 네 살 도윤(가명)이가 매일 링거를 통해 투입되는 독한 약 때문인지 지친 표정으로 곤히 잠들어 있다. 도윤이가 급성 골수구성 백혈병 판정을 받은 것은 생후 4개월 때. 다행히 아빠와 조혈모세포(이하 골수)가 일치해 바로 이식수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년만에 백혈병이 재발해 병원을 찾았고 아빠의 조혈모세포를 다시 이식 받았다. 백혈병이 재발한 것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 8월. 두 번의 이식수술에도 불구하고 병마는 도윤이의 곁을 쉽게 떠나지 않았다.
도윤이의 부모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세 번째 이식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병만 완쾌된다면 하는 희망을 가져보지만 지난 4년간 도윤이네 집안 사정은 말할 수 없이 나빠졌다. 첫 이식수술 때는 보험적용을 받았지만 이후에는 재발한 환자에 대한 보험혜택이 없어 치료비가 눈덩이 불 듯 늘어났다. 전세에서 월세, 다시 사글세방으로 옮기며 치료비를 부담하는 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또 다른 병실.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 놀아야 할 아홉 살 충현(가명)이가 다 빠진 머리를 내보이기 부끄러운지 연신 고개를 숙인다. 예정대로라면 충현이는 지금 골수를 이식 받고 엔젤병동 무균실에서 회복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수술을 앞두고 골수 기증자가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수술시기를 놓친 충현이는 항암치료의 각종 합병증으로 중환자실 오가기를 수 차례 반복하고 있다.
충현이의 부모는 한국에서는 골수가 맞는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말에 일본과 대만 쪽에도 충현이와 골수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아보고 있다. 대만에 조직이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이후 연락이 없다.
성모병원 11층 서병동과 엔젤 병동에는 혈액질환 특히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이나 급성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0세부터 15세까지 어린이 60여명이 입원해 있다. 앞서 도윤이와 충현이처럼 어린이들과 보호자들은 병마로 인해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감당하기 힘든 치료비용이다. 항암치료비, 입원비, 검사비 등 백혈병을 치료하는데는 대략 7000만원에서 1억원의 비용이 든다. 이것도 그나마 보험혜택을 일정부분 받았을 때의 경우다. 도윤이처럼 병이 재발했을 때는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또 어린이의 상태가 악화돼 독방으로 옮기게 되면 치료비는 더욱 늘어난다. 경기 불황이 계속되는 최근에는 특히 치료비 때문에 고민하는 보호자들이 부쩍 늘었다는 게 병원 관계자들의 말이다.
▲ 신앙은 백혈병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곧 희망이다. 가톨릭대 성모병원 원목실 이수민 수녀가 백혈병 어린이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예비신자교리를 하고 있다. 올해 병동에서는 환자와 보호자 5명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며 현재도 7명이 교리를 받고 있다.
병동에서 만난 한 보호자는 『한 명의 기증자가 나올 때마다 부모들은 정말 큰 희망을 갖는다』며 『기증을 거부하거나 연락을 끊어버리면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병동에서 만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었다. 같은 병실에서 지내다가 수술을 받고 엔젤병동으로 옮긴 친구를 만나기 위해 병동 앞을 서성이는 한 아이의 얼굴에서는 백혈병이라는 무서운 병마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신나게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종이 접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우리가 평소 거리를 거닐며 보아온 평범한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고사리 손에 꽂힌 링거 바늘과 다 빠져버린 머리만이 무서운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병동 이름처럼 맑고 해맑은 어린이 천사 1200여명이 매년 백혈병을 비롯한 소아암 진단을 받는다. 치료과정이 어렵고 길며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기 때문에 백혈병 어린이와 가족들이 감당하는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어린이는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날개 잃은 천사들에게 새 삶의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야말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에 우리 모두가 실천해야 할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어린이 백혈병은?
10만명에 10∼15명, 생존율 81%로 늘어
백혈병은 골수의 정상 혈액세포가 어떠한 원인으로 인해 암세포로 전환된 것으로 소아암에 포함된다.
한국중앙암등록본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2년 우리나라에서 새로 발생한 소아암 환자수는 전체 새로 발생한 암환자의 약 1.2% 수준(총 1188건)이며, 이중에서도 백혈병은 373건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소아암은 성인암과 달리 인종과 국가에 관계없이 일정한 비율 즉 10만명 당 10∼15명 정도로 발생하고 있다. 담배, 식습관이나 환경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 성인암과 달리 소아암은 유전자에 일정비율로 이상이 생겨 발생하게 된다.
결국 백혈병을 포함한 소아암은 각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는 것이며 사회적 노력으로 많은 어린이들을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립암센터 자료에 따르면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경우 1960년대 9%에 불과하던 생존율이 치료방법의 발전으로 1990년대 들어와서는 81%로 향상됐다. 급성 골수구성 백혈병의 경우도 골수이식을 통해 생존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하지만 백혈병을 포함한 소아암은 여전히 어린이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성모병원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백혈병으로 투병중인 어린이와 보호자들은 경제적인 부담과 함께 이식이 가능한 골수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정상적인 치료를 받게 되면 충분히 완치될 수 있는 어린이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는 가슴 아픈 일들도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따라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어린 생명들의 삶을 살리는 것이 곧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을 갖고, 백혈병 어린이를 돕는 데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