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연합」이 11월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사형폐지·종신형 입법화를 위한 대회」는 잇따른 흉악범죄 등 숱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문화 건설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확인한 자리였다.
종교인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일반시민, 학생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는 사형의 대체형인 종신형을 둘러싼 국내외의 다양한 인식에 대한 공유를 통해 새로운 모색을 위한 전환점을 제공해주었다.
결의대회 형식을 띤 이날 행사는 범종교연합 대표단의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최기산 주교의 인사말, 유인태 의원(열린우리당)의 사형폐지 특별법안 입법 소개에 이어 성명서 낭독,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 수녀들의 중창, 이해인 수녀의 시낭송 등으로 이어지며 열기를 더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초청으로 방한한 미국 「화해를 위한 살인피해자협회」(MVFR) 로버트 레니 쿠싱(Robert Renny Cushing) 대표는 범죄피해자에게 다가서는 공동체의 모색과 역할이 사형제도 폐지는 물론 나아가 한 사회의 생명에 대한 패러다임까지 바꿀 수 있음을 역설해 눈길을 끌었다.
쿠싱 대표는 「우리는 왜 살인가해자의 사형을 반대하는가」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살인이라는 행동은 한 순간에 끝나지만 그로 인해 피해자가족들은 정부나 사회로부터 가해지는 추가적 고통이나 무관심으로 「재피해자화」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그는 『범죄피해자 가족들은 스스로 「재피해자화」 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곧 자기 자신을 위해 사형제도가 폐지되는 것을 원한다』고 밝혀 사형폐지운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는 범죄피해자가 치유로 향해 가는 첫 단계로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시하고 이를 위해서는 피해자를 둘러싼 다양한 정보 수집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민간과 종교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 또 다른 발표자로 나선 일본 사형폐지 포럼90 대표 야스다 요시히로 변호사는 한국 사회에서 사형제의 대안으로 부각된 종신형이 절대적 목표가 아니라 인권 신장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의견을 피력해 이채를 띠었다.
야스다 대표는 종신형제도가 ▲사형만큼 또는 사형 이상 잔혹하다 ▲완만한 사형과 다름없다 ▲수형자의 절망으로 인한 탈옥 또는 시설 내 잦은 범죄로 규율이 유지되지 못한다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사회복귀라는 교정 본래 목적에 반한다는 등의 비판을 재비판하면서 이같은 접근들이 실증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인권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각각 80.8%와 10.4%이던 사형 존치와 폐지에 대한 지지 비율이 종신형 도입을 전제로 했을 때 각각 48.4%와 39.8%로 바뀐 지난해 일본 내 사형제도에 대한 의식조사를 소개하며 사형폐지를 위한 지속적인 모색과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나아가 그는 『종신형이라 하더라도 사면에 의한 자유회복의 길은 남아있다』고 전제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사면을 받아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점을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해 관심을 모았다.
두 강연자들은 한국 사회가 사형제도폐지운동을 통해 거두게 될 성과가 일본은 물론 극동아시아지역에서 다양한 의식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데 공감을 표시하고 종교계를 필두로 다양한 연대의 틀을 확대해나갈 것을 제안했다.
특히 이들은 이날 행사를 통해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위한 노하우를 전해줌으로써 앞으로 교회가 펼쳐나갈 피해자 지원 사목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전망된다.
■ 사형폐지특별법안은… ‘사형대신 종신형으로 대체’
제17대 국회에서 새롭게 추진되고 있는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의 골격이 드러났다.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을 비롯해 재적 의원 과반수인 150명이 넘는 의원들이 공동발의한 사형폐지 특별법안은 형법 및 기타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형벌 중 사형을 폐지하는 대신 가석방이나 감형을 할 수 없는 종신형으로 대체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이 법안은 천주교를 중심으로 7대 종단 종교인들이 추진해온 입법안을 수용한 것이어서 입법 추진에 힘이 실리고 있다.
법안은 제안 이유를 『인간의 생명은 인간실존의 근거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며 따라서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되고, 다른 가치와 비교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것』이라며 『반인권적이고 비인도적인 형벌이라고 할 수 있는 사형을 폐지함으로써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형벌체계를 수립하여 인권신장국가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목적을 밝힌 제1조를 비롯해 사형의 종신형 대체를 규정한 2조, 종신형의 정의와 종류를 밝힌 3조 등 총 3개 조와 부칙으로 구성된 법안은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에서 절반 이상의 의원이 찬성하고 민주노동당도 당론으로 찬성입장을 보이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국회통과 전망이 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 의원과 법조계, 보수단체 등이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고 있어 법안 심의과정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1999년 당시 유재건 의원이 「사형폐지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함으로써 시작된 사형폐지 입법활동은 16대 때인 2001년에도 정대철 전 의원 주도로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이 발의됐지만 한번도 논의되지 못한 채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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