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가톨릭 교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성사(聖事)는 하느님 사랑의 발로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고」, 「듣고」, 「느끼기」를 바라는 인간의 처지를 헤아리신 하느님의 눈높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제 모든 성사의 기초가 되는 세 가지 원리를 음미해 보기로 한다.
성사의 기초가 되는 세 가지 원리
두루 알려져 있듯이 가톨릭 교회가 공적으로 인정하는 성사에는 7성사와 준성사가 있다. 7성사는 예수님이 직접 제정하신 성사들(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 혼인, 성품)을 말하고, 준성사는 예수님의 7성사 제정 정신을 살려서 교회가 필요에 따라 제정한 성사들(축복, 축성, 구마)을 말한다.
그런데 이들 성사들에 녹아 있는 공통원리들이 있다. 즉, 성사성(聖事性)의 원리, 매개(媒介)의 원리, 성찬(聖餐)의 원리가 여러 성사들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일단 간략하게 풀어서 말해본다면, 성사성의 원리란 이 세상의 가시적인 것들 속에 비가시적인 「거룩한」(=신적인) 그 무엇이 배어있다는 원리를 말한다. 매개(媒介)의 원리란 성사에 사용되는 모든 상징물이나 형식들은 그것이 가리키는 내용을 단지 상징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으로 매개해 준다는 원리를 말한다. 성찬의 원리란 모든 성사들의 원천이 스스로를 살과 피로 내어주시는 성체적 사랑이라는 원리를 말한다.
이 세 가지는 성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우리가 하나하나 그 깊은 의미를 포착하게 되면 우리의 신앙과 영성이 한결 풍요로워 질 것이다.
성사성의 원리
가톨릭 세상을 둘러보는 여정의 초기에 필자가 즐겨 인용했던 구상 시인(1919~2004년)은 만년에 성사성의 원리를 기막히게 터득하였다. 물론 어림으로 인식하기는 소싯적부터였을 것임을 우리는 그의 신앙고백이 담겨있는 시문들을 통하여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깨달음의 꽃몽오리가 터진 것은 노년(老年)에 이르러서였다. 시인은 「은총에 눈을 뜨니」라는 제하에 다음과 같이 개안(開眼)의 기쁨을 노래한다.
이제사 비로소 / 두 이레 강아지만큼 / 은총에 눈이 뜬다.
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 만상이 / 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 / 그렇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 / 나고 죽고 그 덧없음이 / 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
이제야 하늘이 새와 꽃만을 /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 / 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 / 눈물로써 감사하노라.
아침이면 해가 동쪽에서 뜨고 / 저녁이면 해가 서쪽으로 지고 / 때를 넘기면 배가 고프기는 / 매한가지지만 / 출구가 없던 나의 의식(意識) 안에 / 무한한 시공이 열리며 / 모든 것이 새롭고 / 모든 것이 소중스럽고 / 모든 것이 아름답다.
(구상, 「마음의 눈을 뜨게 하소서」에서)
시인의 발견은 사실 그만의 독점적 경지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육안(肉眼)에는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은총에 눈을 뜨게 되면 세상이 지난날 보아왔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보이게 된다. 하찮은 들꽃 하나도 거룩함이 깃든 하느님의 피조물로 보이게 되고, 지난날 슬픔과 고통 투성이로 보였던 삶의 편린(片鱗)들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축복과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껏 몸부림치며 고독하게 살아온 줄로만 알았던 자신의 삶에서 드러나지 않게 도움의 손길로 부추겨 왔던 하느님의 동반(同伴)에 눈물로써 감사할 줄도 알게 된다(졸저, 「여기에 물이 있다」 참조).
이 순간이 바로 성사성의 원리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곧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그 거룩한(=신적인)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터득하는 찰나인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 아우구스티노의 설명을 따라서 『성사는 보이지 않는 은총(신적인 현존)의 보이는 표징』이라고 설명해 왔다. 이는 보이는 그 무엇 안에 보이지 않는 신적 은총이 깃들여 있다는 「성사성(聖事性)의 원리」에 정초하고 있다.
우리는 이 원리에 입각해서 인간(人間) 안에서 신적(神的) 존재를 「보며」, 유한(有限) 안에서 무한(無限)을, 물질(物質) 안에서 영(靈)을, 내재(內在) 안에서 초월(超越)을, 역사(歷史) 안에서 영원(永遠)을 「본다」.
이 세상 만물은 성사성을 지녔다. 곧 만물 속에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현존이 스며 있다. 그래서 성 이냐시오가 하였듯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성사성의 원리가 있기에 우리는 사람, 공동체, 사건, 자연, 우주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신학교 시절 수업 중에 어느 교수 신부님이 추억을 더듬으며 최민순 신부님의 시 한편을 읊어 주셨다. 최민순 신부님이 아침 산책길에서 주우신 「발견의 기쁨」을 들려주셨다는 것이다. 오늘도 필자의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 있는 그 시의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다.
꽃을 본다.
꽃의 아름다움을 본다.
꽃의 아름다우심을 본다.
최민순 신부님은 「꽃」을 통하여 하느님의 「아름다우심」을 보았다.
그러고 보면 은총이란 단순히 「받는 것」이 아니라 「발견 하는 것」이며 「보는 것」이며 「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발견하는 만큼, 보는 만큼, 꼭 그 만큼 누리는 것이 은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눈을 뜨게 되면 구상 시인이 노래하였듯이 「출구가 없던」 우리의 의식 안에 「무한한 시공」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거룩하게 대하고, 아름답게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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