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고구마 밭을 캘 때, 실한 줄기 하나를 당기면 잘 생긴 고구마들이 줄줄이 딸려오는 것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곤 했다. 시장에서 가게들을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매달 발행하는 소식지를 돌리다보면, 여기저기서 『사실 저도 한 때 성당 다녔습니다』라고 고백해오는 이들이 참 많다. 이럴 때마다 나는 어릴 적 고구마 밭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커다란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된다.
시장사목 신부로서 제일 행복할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바로 이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장에서 생업에 종사하다보니 쉬게 된 교우들이 사실은 이처럼 깊은 갈망과 괴로움으로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느끼는 순간이고, 동시에 하느님께서 어쩌면 더 큰 그리움으로 이 아들딸들을 기다리고 계셨음을 깨닫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잘것없는 사람의 방문이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방문이 된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에게는 장바닥을 돌아다니는 이 일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깊은 데에 가서 그물을 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억에 남는 자매님 한 분이 있다. 신앙생활을 쉬신 지 25년 된 분인데, 가게를 방문한 나에게 가게 제일 깊숙한 곳에 숨겨둔 금고를 열어 보여 주셨다. 그 금고의 제일 깊은 곳에는 25년 전에 받은 신자증과 통장이 따로 보관되어 있었다.
통장에는 상당한 액수의 돈이 들어있는 상태였다. 당시에 만든 교무금 통장인데 미처 성당에 내지 못한 교무금이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지금껏 이 돈과 통장을 그대로 보관하고 계셨냐고 놀라는 표정인 나에게 자매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 돈은 하느님의 것이기에 손을 댈 수 없었노라는 것이었다.
시장사목은 어떤 의미에서 군대로 치면 훈련소 역할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장사 때문에 신앙생활을 몇 년 쉬다보니 기도하는 법도 잊어버리고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게 된 분들을 다시 잘 교육시켜 「자대」인 본당에 돌려보내는 것이 시장사목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성공적인 시장사목을 위해서는 「야전」에서 수고하시는 본당 신부님들과의 연대가 정말 중요하다. 부산의 시장사목이 짧은 시간에 이 정도라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본당 신부님들, 특히 시장을 끼고 있는 본당 신부님들의 특별한 관심과 지원 때문이었다.
시장에서 신앙생활을 등한히 할 수 밖에 없게 된 형제자매들을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등의 척박한 토양에 떨어진 한 알의 씨앗에 비유한다면, 이 씨를 잘 돌보아서 「자대」인 본당에 옮겨 심어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장사목의 존재이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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