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린 겨울비에 교정의 나뭇잎들이 다 떨어져 버렸다. 언제부터인지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이제 그 나무가 견뎌야할 혹독한 겨울을 걱정하는 버릇이 생겼다. 걱정도 팔자인 성격 탓도 있지만, 기다림의 고통을, 그 버려진 듯한 상실감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부터, 나무의 겨울은 외면하기 어려운 고통이 되어버렸다. 그 어떠한 절망 중에도 울지 않고 꿋꿋하게, 아름다운 끝을 기다려온 사람만이 최후의 승자가 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연말(年末)이다. 좀처럼 연인을 만날 수 없었던 아가의 여인도, 이제 그 오랜 기다림의 결실을 맺게 된다. 아무리 슬펐던 기다림도 진솔한 눈물을 품고 있다면, 생의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게 되는 순간, 기적 같은 만남으로 위로받을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
7, 12~14
이제 여인은 대담한 제안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연인과 함께, 아무런 방해도 없는 들로 나가 자연의 축복안에 밤을 지내자는 것이다. 13절에 표현된 만개한 자연에 대한 비유는, 만개한 그들의 사랑을 상징해준다.
문간에 있는 과일들이 『햇것도 있고 묵은 것도 있다』는 14절의 표현은 그녀가 연인과의 만남을 위해 오랜 시간 「모든 것」을 차곡차곡 간직해 왔음을 말해준다. 그 과일들은 그녀의 삶 전체와 사랑의 역사 전부를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8, 1~4
1~2절에서 여인은, 사랑하는 연인이 자신의 남자 형제였으면 좋겠다고 염원한다. 좀 더 쉽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관계,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그런 관계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둘의 완전한 결합은 3~4절에서 표현되는데 이러한 내용은 이미 2, 6~7에도 등장한 바 있다. 그러나 사랑을 방해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이 부분은, 비논리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까지 『당신』이라고 불려진 연인은 『그이』라는 3인칭으로 불려지며, 『껴안는다면!』하는 히브리어 「미완료」형은 미래적 시점을 제시하므로, 지금까지의 내용들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이 「꿈」인 듯이 처리되고 있는 것이다. 이 다섯번째 시는 사랑을 방해하지 말아달라는 여인의 간절한 염원으로 마무리된다.
8, 5~14(마지막 시)
아가의 대단원의 막은, 마침내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여 사랑의 영원성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참 사랑은 죽음만큼 강하고 불길보다 맹렬하다고 노래하는데, 이러한 내용은 아가의 전반적 메시지를 집약적으로 수렴한다. 특히 이 마지막 시는 아가서가, 여러 노래들의 선집(collection)임을 증명해 준다. 각각의 부분들이 서로 연관 없이 모아져 있기 때문이다(5절 6~7절 8~10절 11~12절 13~14절).
5절
『자기 연인에게 몸을 기댄 채 광야에서 올라오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5절)라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첫 부분은 3, 6과 6, 10에서도 반복된 바 있다. 다만 8, 5은 화자가 누구인지 정확하지 않고(아마도 여인의 친구들인 듯),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렇게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아가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경우이기에, 5절의 동반 등장은 매우 특별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먼저 노래를 부르는 이는 역시, 여인이다. 그녀는 과거를 회상하며 노래를 시작하고, 사랑하는 연인이 잉태되던 순간부터 그를 사랑해 왔음을 고백한다. 이 부분에 등장한 「사과나무」는 2, 3에서 이미 연인을 상징하는 모티브로 등장한 바 있는데, 이제 그녀는 사과나무 아래에서 연인의 어머니가 그를 잉태하던 순간, 즉 그의 생명이 시작되던 순간부터 줄곧 함께 해왔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사랑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를 알아온 듯한 편안함과 익숙함 때문에 시작된다고 한다. 일곱살이었을 때도, 스물일곱이 되어서도,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어쩌면 우리는, 지금 사랑하는 바로 그 존재를 향해 방향 지어져 있었던건지도 모를 일이다. 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결국은 만나게 되니….
메시아를 그토록 기다려왔던 이스라엘이었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고만 것은, 잘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증명해준다. 잘 기다리지 못하면 운명적 만남도 없고, 설사 만났다 하더라도 그를 알아볼 혜안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대림절이다. 잘 기다리지 못하면 아름답고 충실한 성탄도 기대하기 어렵다. 모두가 미소 지을 수 있는 성탄을 위해, 좀 더 기다림에 성실한 오늘이었으면 한다. 기다림의 나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가 곧 오시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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