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벌써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린다. 대림 시기는 세모(歲暮)와 겹쳐서 그런지 더 은혜롭게 느껴진다. 희망에 찬 기다림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동시에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기약해 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거리에 벌써 울려 퍼지는 올해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뭔지 모르게 썰렁하게 느껴진다. 극심한 불경기 탓일까? 특히 재래시장의 우리 상인들의 얼굴을 보면 성탄절이 가까울수록 마음은 더 답답해진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을 생각한다. 그는 평생 어부질만 해 왔고 바다를 떠나서는 도무지 살 수가 없는 사람이다. 많은 우리 상인들이 평생을 재래시장에서만 일해 왔고 장바닥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말이다.
몇달간 고기라고는 한마리도 구경하지 못했지만 동료 어부들의 배에 비해 터무니없이 낡은 목선을 끌고 바다로 향하던 산티아고 노인은 얼마나 비장한 심정이었을까. 잡은 고기를 뜯어먹으려 달려드는 상어떼를 쫓으면서 그가 외쳤던 말이 있다.
『인간이 희망을 놓쳐버리면 그보다 더 큰 죄악이 따로 없다』
바로 이 대림시기에 우리 상인들과 함께 꼭 기억하고 싶은 말이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평생을 고수해 온 방식이 거대 자본을 앞세우고 무섭게 잠식해 오고 있는 대형 할인 매장과 백화점의 상술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전자 상거래라는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도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산티아고가 바다를 떠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 상인들도 시장 바닥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노인이 상어떼를 거슬러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듯이, 우리 상인들도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역부족이나마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나는 혹자가 주장하듯이 재래시장은 어차피 없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현재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훌륭히 잘 극복하고 재래시장만의 매력과 장점을 살려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켜 나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 역시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위해 물론 무엇보다 상인들 편에서 먼저 비상한 지혜와 노력으로 근본적인 자구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들, 특히 우리 신자 소비자들 편에서도 어떤 의식화가 필요할 것 같다. 「상행위의 인간화(혹은 영성화)」라 할까,
상거래 자체를 싸고 편리한 물품구입 행위로만 여기지 말고 훈훈한 인간애와 배려가 오가는 현장으로 가꾸어 나가려는 노력은, 삭막한 이 세상의 사막에 우물을 파는 일이 될 것이다.
생떽쥐페리는 「어린 왕자」의 입을 통해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노력에 따라 시장바닥이야말로 바로 그런 우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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