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짧은 겨울날. 오후 2시면 어김없이 장비(?)를 챙기고 산으로 향한다.
최주식(가밀로.70.대구 상동본당) 할아버지의 양손에는 지팡이들이 가득하다.
『이 지팡이 멋지지 않나, 산에서 나무를 구해다가 사포로 다듬고, 니스칠을 하고, 끝부분에 고무바킹까지 씌워 만든거지』
그 많은 지팡이를 어디에 쓸까? 산을 오를려면 하나면 충분할 텐데 말이다.
할아버지 집에서 함께 10분을 걸어 다다른 곳은 장암사 입구. 등산로가 보이고, 산을 오르기 위해 지나쳐가는 이들이 간간히 보인다.
한 할머니가 산을 오르며 인사를 건넨다.
『아이구 할아버지, 나오셨네요. 지난번 만들어준 지팡이 덕분에 산에 잘 오르고 있어요. 우리 나이 많은 이들한테는 얼마나 필요한지 몰라』
『허허, 다행이네 그려. 지팡이 낡으면 또하나 만들어줄께요』
그렇다. 최 할아버지가 갖고 온 지팡이들은 등산객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것. 잠시 후, 한 친구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다 그의 지팡이를 보더니 이내 가방을 푼다. 그리고 칼과 연장을 꺼내더니 스삭스삭 다듬고 고무바킹을 새로 씌워 수리도 해준다. 그렇게 해거름까지 지팡이를 나눠주고, 다듬으면서 장암사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하루는 지팡이 만들 나무를 구하러 산에 오르고, 다음날은 집에서 저녁나절 꼬박 만든 지팡이를 나눠주고…. 1년전부터 이어오는 최 할아버지의 하루 일과다. 그간 나눠준 지팡이만 200여개.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13년전 척추를 크게 다쳐 수술을 했다. 몸을 의지할 지팡이를 살려고 했는데, 당시 돈으로 13만원. 큰 돈이 아닐 수 없었다. 허리가 아픈 이들에게 지팡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할아버지는 1년전부터 운동삼아 집근처 산을 오르며 노인들과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지팡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팡이 할아버지」 최주식 할아버지의 작은 사랑 실천은 이뿐이 아니다.
20년전부터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 마련을 위해 한달 3만원씩 2000만원 만기 적금을 부었다. 그것은 아버지로서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가난이 죄였던 시절, 어린 아들이 뇌수막염을 앓았다.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고, 지금 마흔이 넘도록 아들은 정신지체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기라도 하듯 돈없어 희망마저 빼앗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한 어린이 수술비로도 빠듯해 다른 곳에 도움을 줬다.
지난해 장애인복지시설인 일심재활원(원장=김기진 신부)과 대구 여성장애인연대에 각각 1000만원씩 전했다.
수십년 동안 꽃동네·평화마을·들꽃마을·밀알회 등을 후원하며 작은 정성을 나누고 있으며, 본지에 실린 백혈병 어린이 돕기, 소년소녀가장 학비 지원 등 어려운 이웃을 보면 어김없이 따뜻한 정을 전한다.
물질적 나눔 뿐만이 아니다. 지난 1993년부터 무료급식소 「요셉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줄곧 해오다 몇해 전부터 허리가 아파서 쉬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알려지면서 96년 수성구민 대상, 97년 대구경북사회봉사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버스를 탔을 때, 토큰이 없는 이를 대신해서 토큰을 넣어주는 것, 이러한 작은 것에서부터 사랑은 시작돼요. 나눔과 봉사란 내 이웃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 도움의 손길을 전하는 것이죠. 쌀없는 이에게는 쌀을, 옷없는 이에게는 옷을…, 액수의 크고 작음이 중요한 건 아니지요』
최 할아버지의 나눔의 지론이다. 「과부의 동전한닢」처럼 작은 정성이 모여 큰 사랑의 강물로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고희(古稀). 그는 주님께 영혼과 육신을 맡길 준비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의 황혼 인생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바로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려는 노력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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