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중적 선물인 성사
가톨릭교회가 지니고 있는 자랑스러운 영적 자산 가운데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 7성사와 준성사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3중(重)적인 선물의 의미를 지닌다.
이 선물의 근원적인 수여자(受與者)는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하느님의 성사(聖事), 곧 하느님의 가시적인 현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성사적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차적으로」 우리에게 당신의 성사, 곧 그리스도의 가시적 현존으로서 교회(敎會)를 세워 주셨다. 이를테면 교회는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성사적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삼차적으로」 자신에게 위임된 사명(mission)의 가시적 구현으로서 7성사와 준성사를 우리에게 베풀고 있다. 요컨대 이 성사들은 우리를 위한 교회의 봉사적 선물인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교회를, 교회는 우리에게 여러 성사들을 연쇄적으로 선물하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을 놓치지 않는 신자(信者)는 복(福)된 사람이다. 이 사실을 보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왜냐하면 이 사실이 지니는 깊은 의미를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오늘날 우리가 혹은 습관적으로, 혹은 형식적으로, 혹은 의무적으로 치르는 성사적 절차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곧 성사들 뒤에 숨어 있는 풍요로운 영적 은총들을 역순(逆順)으로 더듬어 확인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성사들은 의무가 아니라 은총이다. 선물이다. 우선 성사들 안에서 우리는 교회의 고마움을 본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교회가 우리에게 베푸는 사목적 보살핌(Pastoral Care)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또한 성사들 안에서 우리는 「교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몰아적 사랑을, 나아가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의 가이 없는 사랑을 만난다. 요컨대, 성사들에는 태초 하느님의 원축복(原祝福)이,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소식(Good News)이, 그리고 교회의 봉사적 사랑이 고스란히 내재(內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 짚어 보기로 하자.
하느님의 성사인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창조의 절정으로 인간을 만드셨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보시니 좋았다」와 「보시니 참 좋았다」는 이 창조계에 서려 있는 하느님의 「원축복」을 시사해 주고 있다.
비록 인간이 불순종으로 타락의 길을 자초하였지만, 하느님의 사랑의 발로(發露)인 원축복은 여전히 폐기되지 않고 인간의 역사(歷史)를 통해 구원의 손길로 나타났다. 이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결정적으로 드러났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성사로서 우리에게 주셨다. 곧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눈으로 「보고」, 하느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하느님의 사랑을 손으로 「만지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을 통해 당신의 그 사랑을 「완전히」 드러내 주셨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자신 그리고 그분의 사랑이 완전히 드러났고, 그 덕에 죄 많은 인간이 죄의 구덩이에서 벗어나 구원받게 되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이는 아버지를 보는 셈이 되었다(요한 14, 9).
▲ 하느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교회를, 교회는 우리에게 여러 성사들을 연쇄적으로 선물하였다.
그리스도의 성사인 교회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성사라고 할 때, 문제가 하나 생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업적을 보여주셨고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지만,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사실이다. 결국 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을 통해 직접 하느님을 만나 볼 수는 없게 되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승천(昇天)하시기 전에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 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그 길이 바로 「교회」 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손수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가 교회를 통해 예수님, 나아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회를 세워 주셨던 것이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6, 13~19).
이렇듯이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던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시몬 베드로를 반석(盤石)으로 하여 교회를 설립하셨다. 이로써 「매고 푸는」 권한을 위임받은 교회가 예수님의 구원 활동을 계속하게 되었다. 즉, 교회가 하는 일이 곧 예수님이 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인 셈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성사라 부른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18항).
교회 사명의 성사(聖事)인 「7성사」와 「준성사」
방금 확인했듯이 교회에는 인간 구원을 위해 「매고 푸는」 권한과 사명(mission)이 위임되었다.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구원전권을 「7성사」와 「준성사」로 성사화(聖事化)하였다. 이 성사들을 통하여 교회는 자신에게 위임된 구원전권 및 사명을 가시적(可視的)으로 구현해 왔다.
이 성사들 안에서 우리는 교회의 봉사적 사랑을 만난다. 곧 성사들은 교회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영적 서비스인 것이다. 구원, 용서, 평화, 성령의 은사, 치유, 사랑, 축복, 보호 등 온갖 영적 은총들이 이 성사들을 통해 제공된다.
고맙고 고마운 것은 이 모든 것이 거저, 공짜로 제공된다는 사실이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 없는 자들아, 오너라. 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어라. 값없이 물과 젖을 사서 마셔라』(이사 55, 1).
보는 「눈」과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이 속속들이 누린다. 누리는 사람만이 뜨겁게 감동한다. 감동하는 사람만이 벅찬 가슴으로 감사드릴 줄 안다. 이것이 가톨릭 성사의 깊은 맛이요 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