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살기 어렵다고 외친다. 정치권은 정쟁 뿐이고, 경기는 계속 불황의 늪에 빠져든다. 가뜩이나 힘든 때, 하나 둘 세워지는 대형마트, 백화점에 가려 소외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재래시장 상인들. 온종일 하나도 팔지 못해 허탈감만 안고 집으로 가는 날이 늘어가고, 점포세 낼 돈도 없어 문닫는 가게가 늘어가고 있다. 재래시장 상인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짊어지고자 교회가 나섰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부산교구 시장사목팀(전담=이윤벽 신부). 「찾아가는 사목」을 내걸고 사각지대에 놓인 상인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기 위해 발로 뛰고 있다. 다가오는 성탄, 말구유처럼 허름한 시장 안에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아기 예수님을 탄생시키려 노력하는 사목현장을 찾았다.
#1. 시장사목전담 이윤벽 신부와 수석부회장 김상범(안드레아)씨와 함께 먼저 범일동에 있는 자유.평화시장에 들렀다.
자유시장 5층 기도모임방. 잠시 일손을 접고 신자 상인들이 둘러앉았다.
『30년 장사했지만,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어예. 새벽에 나와 늦은 밤까지 시장통서 일하면서 적어도 두끼는 시켜묵어야하는데, 밥값 한푼이라도 아낄라고 옆가게와 밥하나 시켜서 나눠묵었어예. 인자, 그 돈도 아까워 도시락 싸갖고 다닌다 아닙니꺼』
이 스콜라스티카씨의 말처럼 시장을 둘러봐도 손님을 찾을 수 없다. 권리금 1억짜리 가게에서 한달에 옷한벌도 팔기 어렵다고 하는 말이 피부로 와닿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곳 상인들의 밝은 표정은 무엇 때문일까?
『그래도 이제 곧 성탄 아닙니꺼. 살기는 빠듯하지만 대림초 밝히고 아기 예수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마음만은 기쁘지예』
『신자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축복을 받았어예. 그날의 일용할 양식은 주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지예. 그래서 새벽 일을 시작할 때마다 하루를 봉헌합니더』
아기 예수님 오심을 믿고 기다림 속에 살기에 이들에게 희망은 있다. 그 희망들이 어둠 속 한줄기 빛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빛은 신앙의 힘으로 빛을 발한다.
이곳에서는 8∼10명의 신자가 매주 수요일 저녁 소공동체모임을 가져오고 있다. 지난해 이신부가 찾아오면서 서로 신자인지 알게 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신부가 시장까지 와서 사목을 한다고 저 난리고」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축복으로 여기고 있다.
#2. 동래 온천시장으로 향했다.
불을 밝힌 전구들 아래로 점포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아이구 신부님 오셨습니꺼』
『장사 잘 되지예』
정육점, 반찬가게, 쌀집 등등 이곳저곳에서 인사를 나눈다.
이곳 역시 이신부가 처음 찾았을 때, 냉담신자들이 꽤 있었다. 시장사목 일선에 나와서 10년 넘게 신앙을 쉬는 이들도 많이 만났다. 이들 중 기억에 남는 이들도 있다.
『25년간 냉담을 한 어느 자매님의 가게를 찾았을 때, 가게 제일 깊숙한 곳에 숨겨둔 금고를 열어보여주더군요. 그안에는 25년전 받은 신자증과 조금씩 모아둔 교무금 통장이 놓여있었는데, 통장에는 꽤 많은 돈이 들어있었죠. 그 자매님의 말씀이 「그 돈은 하느님의 돈이기에 손을 댈 수 없어 그대로 보관해오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 신부는 시장에서 길잃은 어린 양을 찾을 때마다 기쁘다. 그들을 본당으로 잘 이끌어주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기에.
시장사목을 통해 냉담을 하다 다시 교회의 품으로 돌아온 최 엘리사벳씨의 얘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반찬가게를 하다보니 몸에 마늘과 젖갈 냄새가 늘 배어있어예. 씻고 성당에 가도 항상 신자들이 없는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냄새난다고 피해서 멀리 앉는 모습을 보고 상처를 받았지예. 그뒤로는 점차 발길이 뜸해졌다 아닙니꺼』
지금은 매주 토요일 시장 한 곳에서 미사가 봉헌돼 영성체를 할 수 있어 너무나 기쁘다고 한다. 이곳 상인들 모두의 소박한 마음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람사는 냄새로 훈훈함이 느껴진다.
#3. 남포동 국제시장으로 향했다.
자갈치시장과 마주하고 있는 부산서 제법 큰 규모의 시장이다.
골목길을 따라 이른 3층 건물. 창문에 붙인 「행복하이소」라는 큰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참 정감있는 이 말은 시장사목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지난 2월부터 「행복하이소」라는 월간 소식지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으며, 각 시장 상인들의 점포를 링크시켜 홍보.판매하는 홈페이지(www.happyso.co.kr)도 운영하고 있다.
이윤벽 신부는 『시장상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먹고 살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한다』면서 『내년 1∼2월경 「교우 상가 안내책」을 만들어 신자들의 관심을 이끌고, 앞으로 「행복하이소」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신자.비신자까지 아우르는 사목을 펼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힌다.
마침, 찾아간 기도모임방에서는 일대일 예비신자교리가 이뤄지고 있었다. 「일대일 예비신자교리」란 생업으로 바쁜 상인들을 위해 평신도선교사들이 직접 찾아가 일대일로 교리를 하는 것이다. 현재 부산시내 자유.평화.국제.부평.부전.온천.부산진.중앙시장 등지에서 30여명의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1년새 20여명 정도가 세례를 받았고, 그 수만큼 또 예비신자교리를 받고 있다.
국제시장에서는 수.목요일 소공동체 모임이 마련된다. 힘들때면 서로 함께 기도하자면서 기도모임방을 찾기도 한다. 한때 잘나가던 장사터였지만, 지금은 며칠씩 공칠 정도로 장사가 안된다.
30년째 남성복 가게를 운영하는 김 데레사씨는 『4∼5년전까지만 해도 장사가 잘돼 돈도 많이 벌었다. 그때는 내가 잘난 줄 알고 너무 교만했고,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시련을 겪으며 의지할 곳은 주님 뿐이라는 것을 알게됐다』고 고백한다. 자신을 낮추고 『수십번 옷을 입어 보고 그냥 가는 이들에게는 옷입느라고 수고했다며 음료수도 주고, 뒷모습을 보고 90도로 인사할 정도로 손님을 하느님처럼 모시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그날그날 받은 양식으로 살아가는 시장통에서 「하느님을 모시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곧 성탄」이라는 말을 하며 희망 가득한 눈빛. 김치 양념으로 범벅된 옷차림. 열심히 고기썰던 아름다운 손. 손님의 뒷모습에도 환하게 인사하는 밝은 표정…. 그들이 있기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
말구유 같은 시장통. 어둡고 초라한 이곳을 희망의 빛을 기다리는 소박한 마음들로 환하게 밝힌다.
캐럴보다 더 아름다운 상인들의 목소리가 흐르고, 저마다의 삶터에서 새로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 애쓰는 그들에게 어느새 성탄은 다가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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