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모아 반죽하고 희망으로 구워내죠"
『방금 막 구워낸 따뜻한 빵이예요. 맛있겠죠? 이거 전부 우리가 만든거예요』
빵 굽는 고소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곳은 광주시 북구 오룡동에 위치한 씨튼장애인직업재활센터(원장=최은숙 수녀) 내 씨튼베이커리. 이곳에서 만난 16명의 제빵사들은 자신이 만든 빵이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졌다며 참새 마냥 재잘거린다.
여기서 일하는 제빵사들은 전부 장애인. 다른 제과점과 다를 바 없지만 빵 만드는 풍경만은 어느 곳보다 활기차다. 함께 일하는 교사와 수녀, 그리고 장애인들간의 배려와 사랑의 관계가 두텁게 깔려있기에 작업장엔 늘 웃음꽃이 피어난다.
오전 8시, 하얀 모자와 제복을 깨끗하게 차려입은 이들은 오늘 주문량에 맞춰 밀가루와 계란의 양을 측정하고 본격적인 빵 만들기 작업에 들어간다. 비록 몸은 조금 불편하지만 이들은 바쁜 손놀림으로 반죽하고 숙성시킨다. 한쪽에선 뒤틀리고 꼬인 손으로 빵의 모양을 내고, 또 한쪽에서는 뜨거운 오븐에 모양낸 반죽을 집어넣고 잘 구워진 빵을 포장하기 바쁘다.
『대영이 형, 얼굴에 땀 좀 봐. 오븐은 내가 볼께 쉬었다가 저기 반죽 좀 도와줘』
여느 빵집에서는 볼 수 없는 이들만의 풍경. 자신도 장애로 힘들지만 자신보다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이들의 지론이다.
최근에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주문량이 밀려들어 행복한 탄성을 지른다. 안 그래도 웃음이 많은 얼굴인데 요즘 일거리가 늘어나 웃음이 아예 떠나질 않는다.
『순수 우리밀과 엄선된 최고급 재료만을 사용하기에 맛과 영양은 서울 유명 베이커리보다 나을 겁니다. 거기에다 우리의 사랑까지 듬뿍 첨가했거든요』
하지만 이들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모든 일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븐에 넣어둔 반죽을 금새 까먹고 다른 일을 보다 빵을 태우기 일쑤였으며, 손에 힘이 없어 반죽한 밀가루를 쏟아내 재료값이 빵 값보다 더 들어갈 때도 많았다.
또 소비자들로부터도 빵이 『못생겼다』, 『비싸다』는 등의 소리를 들으며 차가운 시선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복되는 연습과 노력으로 실수는 훨씬 줄었으며 주문량도 시작 때보다 두 배를 넘어섰다. 또한 일반 제과점과는 달리 방부제나 빵을 부풀리기 위한 유화제를 사용하지 않기에 느끼한 맛도 없고 쉽게 질리지도 않는 이들만의 제품을 만들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들이 만든 빵을 직접 먹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단골이 된다.
『처음엔 장애인들이 빵과 과자를 만들면서 설탕이나 제대로 넣겠느냐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가장 가슴이 아프고, 갑갑했습니다. 하지만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맛을 제대로 평가해주면서 그런 시각은 많이 바뀌었죠』
여기서 만드는 빵은 30가지가 넘는다. 단팥빵, 소보로빵에서부터 머핀, 마드레드, 카스테라, 케이크 등 시중 제과점에서 볼 수 있는 빵은 거의 다 이곳에서도 만들고 있다.
이곳의 빵과 쿠키는 주문을 받아 판매하고 있으며 재활센터 내 씨튼 카페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선도. 당일 생산한 것은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전국 어느 곳이나 신속하게 배달하며 100개 이상 주문시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오후 4시30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 요즘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자신들이 직접 만든 빵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기쁘고, 작지만 대가를 받을 수 있어서 더더욱 그러하다.
하나의 빵을 만들 때마다 그 속에 꿈을 담고 희망을 부풀리는 씨튼베이커리 제빵사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빵이 장애인이 만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동정이나 연민으로 팔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대신 몸에 좋은 맛있는 빵으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다.
■장애우 제빵사 권희택씨
"할 수 있다 용기 얻어"
『장애는 「불가능」이 아니라 작은 「불편함」일 뿐입니다. 빵도 좋지만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나누고 싶습니다』
광주시 북구 오룡동 씨튼베이커리에서 일하는 권희택(라이문도.22.월곡동본당)씨는 밀가루 반죽부터 빵 굽는 일까지 도맡아 한다. 빵이 생각만큼 잘 부풀지 않고, 오븐의 열기 때문에 땀을 비 오듯 흘리지만,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빵을 받고 좋아할 모습을 생각하면 힘이 절로 솟는다.
권씨는 정신지체 2급 장애를 갖고 있다. 이런 그가 씨튼베이커리에서 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1월. 지체부자유 학생을 위한 교육시설인 은혜학교를 졸업한 그는 학교에서 배웠던 제빵기술을 통해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
『막상 빵을 구우려 하니 막막하더군요. 많이 태웠고, 오븐에 팔을 데기도 했어요. 태운 빵을 앞에 두고 선생님으로부터 야단맞을 땐 어찌나 서럽던지. 괜히 오기가 생겼어요. 거듭되는 실패 뒤에 결국 맛있는 빵이 만들어지더군요』
권씨는 빵을 만드는 순간만은 아무런 장애를 느끼지 않는다. 밀가루 반죽에서부터 오븐에 빵을 굽고, 만들어진 빵을 포장하는 일까지 서너 사람의 몫을 거뜬히 해낸다.
이곳에서 권씨가 일하고 받는 돈은 월 65만원. 권씨도 장애를 지녔지만 부모도 정신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유방암에, 아버지는 얼마전 교통사고로 뇌종양 판정을 받고, 앞도 거의 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매일매일 들어가는 병원비에 살림살이를 하기에는 빠듯한 돈이지만 권씨는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앞으로 최고의 제빵사가 되는게 꿈이라는 권씨. 그는 『제과점을 차려 장애로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돌보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돕고 싶다』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구입문의=(062)973-1152∼2, www.setonhouse.w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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