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미사강론/부산교구장 정명조 주교
"주님 향한 불타는 사랑으로 어진 목자로서 직무를 다해"
오늘의 우리 부산교구가 있기까지 참으로 헌신적인 열정과 지혜로 한 평생을 바치신 고 이갑수 가브리엘 주교님 영전에 여러분 모두와 함께 삼가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사실 지병만 아니셨더라면 저희와 함께 좀 더 오래 머무실 수 있으셨을텐데, 이렇게 생각보다 빨리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셔서 오늘 저희 마음은 깊은 슬픔과 아쉬움에 젖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주교님께서는 아직 젊은 연세에 교구장으로 부르심을 받고 여러 가지로 어려웠던 부산교구를 위하여 참으로 큰 애정으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주교님의 그 크신 노고에 힘입어 오늘의 우리교구가 있게 되었습니다. 주교님의 어진 미소와 착한 눈, 한 번씩 발휘하시던 유머를 기억하며 저희는 주교님께서 이제 하느님 아버지 곁에서 저희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주교님께서 부산교구에 남기신 업적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만, 무엇보다 먼저 주교님의 관심과 염려는 많은 부분 교회쇄신에 가 있었습니다.
1980년 사제 생활 쇄신 집중 세미나에 즈음해서 반포하신 특별 담화문에서는 『현재 세계의 물결의 영향도 있겠거니와, 여하한 외적 환경이라도 교회가 그것을 성화하고 동화시켜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교회는 동적 영향을 주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외세의 영향을 받는 연약한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교회가 세속을 성화하지 못하고 세상이 교회를 속화시키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성화하는 힘은 교회 안의 일치입니다』라는 이 말씀은 무려 24년이 지난 오늘에도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는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성화하는 힘이 무엇보다 교회 안의 일치라고 보신 주교님께서는 특히 사제들의 일치를 간곡히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주교님께서는 사제양성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그리고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그 결과, 1991년 드디어 부산 가톨릭신학대학이 생기게 되는 등 우리 부산교구는 오늘처럼 적지 않은 수의 사목자들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젊은 시절 학자의 길을 걸으시다가 주교로 부르심을 받은 주교님의 가르침은 많은 부분 주교님께서 몇 년 전 펴내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란 책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교님께서 사제 생활 54년간 틈틈이 써 놓으셨던 글을 모아 편집된 이 책의 서문에서, 우리는 주교님의 한 평생을 요약해 주는 짧은 한 마디 말씀을 발견합니다. 『나의 주교 휘장이 상징하는 십자가와 불꽃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듯이 내 나름대로는 이 뜻에 맞게 살려고 평생의 노력을 기울였고 또 내 뜻에 보답해 주시듯, 과분한 주님의 사랑을 늘 느끼며 살아온 길이었습니다』
과연 주교님께서는「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amo te, Domine(아모 떼 도미네)」란 당신의 모토대로 한 평생 주님 사랑 안에서 살려고 노력하시며 당신이 체험한 그 사랑을 사제들과 교우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교구장으로 봉직하셨던 28년 세월 동안 아마 그 누구도 모를 마음고생도 많이 하셨으리라고 봅니다. 교회 안에서 목자라고 불리는 주교는 자기에게 맡겨진 양떼의 삶, 곧 모든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미룰 수 없는 책임을 끌어안고 살아야만 하는 것, 이것이 주교의 십자가입니다. 이 주교님께서는 십자가의 주님께 대한 불타는 사랑으로 목자의 그 어려운 직무를 훌륭히 완수하셨고, 마지막에는 병고와도 잘 싸우시면서 당신이 이 지상에서 마셔야 할 잔을 마지막까지 잘 마시셨습니다. 그리하여 고통으로 정화된 맑고 가벼운 영으로 하느님 면전에서 기쁨을 누리고 계시며 우리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시리라 믿게 됩니다.
지극히 공경하올 주교님, 「amo te, Domine」 평생을 두고 사랑해 오신 주님의 품 안에서 이제 편히 쉬십시오. 저희를 사랑하신 주교님, 저희도 주교님을 사랑합니다. 주님 안에서 부디 편히 쉬시고, 주교님께서 성장시켜 놓으신 이 교구와 모든 교구민들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계속 전구해 주십시오.
주교님, 얼마 후에 주교님이 계시는 그 곳에서 다시 만납시다. 안녕히 가십시오.
■고별사/ 동기사제 이영식 신부
"늘 앳되고 착한 모습 그대로 편히 쉬길"
이갑수 가브리엘 주교님! 축하드립니다.
팔십 평생 그렇게도 원하고, 사랑하고, 보고싶어 하던 주님의 그 얼굴을 지금 뵈옵고 계시지요?
지금 천상에서 모든 선배사제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하늘나라 영광의 월계관을 받아 누리고 계실 줄 믿습니다.
사실은 어제 저녁 꿈에서 주교님 얼굴을 뵈었습니다. 주님 품에 안겨 계셨고 하얀 제의입고 주교님 관을 쓰고 계셨는데 그 얼굴은 우리 처음 만났던 열다섯 살 소신학교 시절 그 앳된 얼굴 그대로였습니다.
주교님 축하합니다.
주교님께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주님께서는 항상 주교님 곁에 계셨고, 주교님을 보호하셨고 그런 주교님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위대한 일을 하셨습니다.
『이갑수, 주교됐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동창신부들 모두는 기뻐하면서도 우려했습니다. 이 어지러운 부산교구에 오셔서 그 나약한 주교님이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요. 그러나 주교님은 꿋꿋한 정신, 단순하고 순진하고 해맑은 모습으로 난관을 이겨내셨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부산교구가 평화를 얻게 됐고, 그 모든 것이 주교님의 노고 덕분입니다.
특히 신학교를 설립한 것을 항상 자랑으로 얘기하셨습니다. 그 곳에서 우리 후배 젊은 사제들이 매년 배출돼서 지금은 넉넉한 사제 수로 성장했습니다.
오늘 우리 주교님들 모시고, 주교님 신부님 여러 신자분들 모두 함께 모여 하느님을 찬미드릴 수 있는 이 성당도 전국적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이것도 이갑수 주교님의 아이디어로 건립했습니다.
주교님은 이렇게 우리 교구가 날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셨습니다. 이러한 때, 적당한 때에 주교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 동기들 모두 팔순 지났습니다. 그러나 주교님은 항상 앳되고 순진하고 착한 모습이었습니다.
주교님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나이 40이 가까이 됐을때 귀국할 무렵 교황청을 들러 교황님을 만났는데 나이가 40이 다돼 간다고 해도 교황님께서 도무지 믿지 않을 정도로 주교님은 동안(童顔)이셨습니다. 항상 어린이같은 순수한 모습으로 모든 이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으셨던 분이 또한 주교님이십니다.
『사랑은 승리한다. 증오와 테러로는 결코 우리 인간을 바로 잡지 못한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한 그 사랑, 주님의 인류 사랑 그것이 우리 인류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이 주교님의 소신이셨습니다.
주교님, 우리 얼마 후에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 하늘나라에서 우리 부산교구가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십시오.
우리 모두 모두 주교님 따라 천당갑시다!
주교님, 이제 우리는 이 세상 살 동안 더 잘 살아가겠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매일 매일 기쁨을 누리고 계십시요.
2월 29일이 생일이신 주교님께서는 이 세상에 살 동안 4년에 한번만 생일을 지냈지요. 이제 생일을 겨우 스무번 밖에 지내지 못했지요.
그렇지만 주교님의 천상탄일인 12월 21일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천상의 모든 천사들과 성인들이 축하해 드릴 것입니다.
주교님, 부디 천상에서 평화의 안식을 누리소서!
■추도사/ 장혁표 교구 전 평협회장
‘교구발전 십자가’ 지셨던 분
존경하올 이갑수 가브리엘 주교님, 이 생에서 이제 뵙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따뜻한 숨결을, 그리고 빙그레 웃으시는 모습을 이제는 영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올 2월, 여태껏 저희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강론원고 등을 정리하셔서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를 출간하시고 「서예전」도 여시는 바쁜 나날을 보내신 것은 오늘 저희들 곁을 떠나려고 하신 일이었습니까?
주교님께서 부산교구 보좌주교로 피명되시어 주교로 서품을 받았던 1971년, 부산교구는 성장을 위한 많은 진통을 겪은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을 따르려는 강렬한 소명의식으로 주교의 영광보다 속내 눈물을 흘리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매달려야 했던 나날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채근담의 「태평한 세상에 처함에는 몸가짐을 방정하게 하여야 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처함에는 원만하게 해야 한다(處治世 宜方 處亂世 宜圓)」는 원리에 따르시느라고 말입니다. 부산교구 관리주교로서의 3년간의 시간은 50여년 사제 생활 전체와도 버금가는 학습과정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물결이 전세계 교회에 쇄신의 바람을 일으켜 놓은 시기였습니다.
격동의 80년대에 주교님은 초연하셨습니다. 부산교구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코자 타 교구에서 미처 생각지도 못한 교구 시노드를 개최하여 과거의 반성과 미래의 청사진을 멋지게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야 한국 사회의 병리가 치유될 수 있다고 지적하신 주교님의 말씀에 저희들은 따르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만 그 뜻을 더 넓고 깊게 헤아리지 못한 점 주교님 영전에 깊이 사죄드립니다. 주교님을 사람들은 마음씨 고운 할아버지로 부르기도 했답니다. 그러면서 교구 발전을 위해 결단도 내리셨습니다. 가톨릭대학을 설립하셨고, 그후 지산대학과의 통합으로 종합대학교로 개편하셨고 또한 많은 성당의 신축, 가톨릭복지법인의 설립 등은 오로지 주교님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삶 전체를 하느님께 송두리째 바쳤습니다. 「아모 떼도미네」(AMO TE DOMINE,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모토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불길처럼,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나누어지시면서 그 고통의 의미를 체험을 통해 증거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것도 밖으로 전혀 드러내지 않으시면서 말입니다.
저희들이 당신을 떠나버렸다고 생각해도 저희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 주교 이 가브리엘을 품에 안으셔서 주님과 함께 복락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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