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원에는 다른 병원에서 찾아보기 힘든 어린이 병원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병원에서는 어린이 병동을 갖추고 운영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 병원에서는 병동 개념을 넘어선 어린이들만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어린 친구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아직도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리모델링 후에 더욱 밝고 쾌적한 모습으로 어린 친구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밝은 모습 뒤에는 참으로 많은 아픔과 슬픔들이 가득하다. 신학생 때부터 줄곧 죽음에 대해 묵상해 왔지만 어린이 병원에서 생활하는 어린 친구들과 부모님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매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가나 재산가, 위대한 성인들에게도 찾아오는 공평한 죽음이 이제 막 시작하려는 생명의 울부짖음으로 변할 때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가득한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한달에 1억원이 넘게 나오는 치료비를 뒤로 한채 정신이 들어 엄마라고 외치는 소리를 단 한번이라도 들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매일 병상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다리는 어머니.
완치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희귀병에 걸린 아기를 위해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끝내 정부보조를 받기 위해 월급쟁이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 아내.
일주일에 서너번씩 어린 딸의 정기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 멀리 남도지방에서 병원 근처 사글세 집으로 이사한 어머니와 기러기 아빠가 된 남편.
빠진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다시는 거울도 아무도 보지 않겠다고 우는 어린 친구와 이제 얼마 안남은 딸의 일생을 못내 참지 못해 오열하는 어머니.
나는 『사람만큼이나 많은 사연들 앞에서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하고 생각하며 설레던 본당생활과는 달리 항상 어린이 병원 문턱에만 서면 왠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떨치지 못한다.
『요셉은 오늘 좀 건강해졌을까』, 『마리아에게 오늘 무슨 이야기를 할까?』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서는 나의 모습보다 『오늘은 또 어떤 아픈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마음 아파하는 부모님을 어떻게 바라보지? 예수님도 참 무심하시지』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향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볼 때가 더 많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모습을 나는 완전히 바꾸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 내일도 무거운 발걸음을 디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과 슬픔이 나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고 예수님의 것이라 생각하기에 절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누면 가볍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 모습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라는 고민이 이제 내 자신을 넘어 넓은 지평 위로 날아오르리라 확신한다.
-황영욱 신부〈서울대학병원 원목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