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세례로 신앙 대물림해야”
유아세례율 급감 누적으로
가톨릭 청년 신자층 궤멸
이제 세례와 관련하여 우리의 사목현실에로 관심을 돌려보자.
잠깐 짚고 갈 일
조금 있다가 교세통계에 나타난 최근의 추세를 살펴볼 것이다. 그러기에 앞서서 따져보고 갈 문제가 하나 있다. 필자는 그동안, 여러 교회 언론매체에서 신흥영성(뉴에이지)운동의 피해상, 젊은층의 신앙이탈현상 등을 교세통계에 입각하여 심각한 위기징후로 지적해 왔다. 그랬더니 『숫자가 뭐 그리 중요하냐, 양(量)이 무슨 대수냐』라는 반론이 더러 있었다. 즉, 『신자 숫자 늘고 줄고에 집착하지 마라. 보다 중요한 것은 질(質)이다. 질을 얘기해야 한다. 교회는 숫자 늘려서 자기확장에만 힘쓸 것이 아니라 종교간 대화와 사회정의에 기여해야 한다. 하느님 나라를 교회 안에 가두어 둘 일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구현하도록 힘쓰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하는 견해였다.
수긍한다. 십분 이해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지평을 인류(人類)에로 넓혔으며, 세상을 「밖을 향한 교회」(ecclesia ad extra)라고 천명하지 않았던가. 종교간 대화는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시대의 당위이다. 세상 안에 하느님 나라가 구현되도록 투신해야 하는 것은 기본에 속하는 것이다. 중히 여겨야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자본주의의 원리」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 마케팅에서 양(量)은 바로 질(質)을 반증해 준다. 많이 팔렸다는 것은 그만큼 질이 뒷받침해줬다는 얘기가 된다. 한두 번 사기를 쳐서 저질의 것이 많이 팔릴 수는 있지만 그것은 금세 들통이 나고 만다. 오늘날 소비자의 눈은 대단히 정확하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에 양은 곧 질을 말해주며, 질은 양을 보장해 준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교세통계는 수량(數量)의 문제를 넘어 질(質)을 성찰케 해주는 단서가 되어주기에 중요한 것이다. 뒤집어 말해서 숫적인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처방은 질적 개선이라는 얘기이다. 「양」을 말하는 이유는 「질」을 말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목해야 할 통계
세례와 관련하여 지난 해 가톨릭신문의 기사가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1960년부터 2002년까지 전체 신자수는 9.6배가 증가한 반면 유아세례율은 무려 6배나 감소한 것으로 밝혀져 유아세례 감소 현상에 대한 교회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요청되고 있다. 최근 주교회의는 공지사항을 통해 교세통계상으로 드러난 유아세례 감소율의 심각성을 제기하고 교회법위원회 협조로 유아세례 필요성 등에 대한 교회 입장을 알렸다』(가톨릭신문 03-07-27).
유아세례율의 저조는 근래 거의 모든 교구들이 고심해 온 문제이다. 이와 더불어서 주목해야 할 것이 젊은층 신자가 급감하고 있는 현상이다. 2003년 말 교세 통계에 의하면, 6세 이하 연령대의 신자증감률은 -18.4%, 7~19세 연령 대는 -9.1%, 20대 청년층은 -7.7%를 보였다. 특히 가장 왕성하게 활동을 해야 할 30대 청년층이 -7.2%를 기록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신앙 이완 내지 이탈 현상이 유독 가톨릭교회에만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는 타종교의 실태와 비교해 보면 금세 드러난다. 통계청의 「2003년 사회통계자료」를 토대로 환산해 보면 사태의 실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평균으로 쳤을 때 가톨릭신자 1명일 때 개신교신자 3명 불교신자 4명인 데에 반해, 청년층(15~29세)에서는 가톨릭신자 1명일 때 개신교신자 9명 불교신자 8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단순한 통계수치 하나 만으로도 차세대 가톨릭교회에 닥칠 파국은 여실히 예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태가 이정도 되고나면 질적인 성찰을 아니 할 수 없게 된다.
유아세례에 얽혀서
문제의 실타래를 풀어가 보자. 원인이 무엇이며 대안은 무엇인가? 필자는 청년 신자층이 궤멸(潰滅)하고 있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유아세례율의 부진이라고 본다. 우선 유아세례율이 수십 년간 급감하다 보니까 이것이 누적되어 청년신자층이 극도로 빈약해지는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이후 교회와 부모들이 첫영성체 및 견진성사를 소홀히 여긴 탓도 있을 것이다. 이는 그나마 다시 관심을 회복하여 챙겨주면 해결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유아세례의 경우는 다르다. 일단 유아세례를 거르고 나면, 그 이후에 세례의 기회를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본당들에서 첫영성체 교육 때 특별한 배려로 세례의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부모들이 이를 활용하는 예는 극히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청소년기를 지나고 나서 부모의 권유로 세례를 받게 될 확률은 이제 거의 비신자 가정 입교시키는 비율에 가깝게 된다.
한 마디로 가톨릭 가정에서의 신앙대물림은 거의 유아세례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유아세례를 받았어도 그 신앙을 유지하도록 교육하는 일이 어려울 판인데, 유아세례 없이 신앙을 대물림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을 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본래 유아세례는 유아사망을 대비한 조치였지만, 신앙 교육의 관점에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엄마의 젖을 물릴 때부터 세례명을 불러 주며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아이의 무의식에 신앙을 심어 주는 데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슬람 신도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그날부터 매일 다섯 번씩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을 아이의 귓가에 들려준다고 한다.
『라 일라하 일리-이-라, 모함메아둔 라술루-일라(알라는 유일한 신이시며, 마호메트는 알라의 예언자이다)!』
그리고 이는 아이가 성년이 되었을 때 매일 메카를 향해 다섯 번씩 바치는 기도문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고 한다.
유다인 역시 아이 때부터 그 유명한 「셰마 이스라엘」(너 이스라엘아 들어라)을 들려주며 조기 신앙교육을 한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이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희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라. 이것을 너희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 주어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 주어라. 네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문설주와 대문에 붙여라』(신명 6, 4~9).
「야훼사랑」이라는 핵심신앙을 이처럼 통합적이며 반복적으로 주지시키는 조기신앙교육이 있었기에 유다인의 (신앙)정체성은 수천 년간의 고난 속에서도 끄떡없이 요지부동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39명의 목사들이 연합하여 운영하고 있는 「교회학교성장연구소」(소장 박연훈 목사)는 다음과 같이 「5대 운동」 표어를 걸고 어린이 신앙교육을 위해 뛰고 있다: 1. 어릴 때 은혜체험을! 2. 어릴 때 주일성수! 3. 어릴 때 십일조! 4. 어릴 때 기도의 사람을! 5. 어릴 때 찬양과 말씀의 사람을!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손을 놓고 망연자실하기만 할 것인가? 대안을 기다리는 필자의 마음은 결코 강 건너 불을 보는 심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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