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알려진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데뷔작은 「유럽의 교육」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절망의 시간에도 자신의 선의를 다시 발견하는 능력」을 교육의 힘이라고 피력하였다.
노벨 물리학상에 빛나는 마리 퀴리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언제 한번 이 지면에서 인용한 듯하지만 아름다운 구절이니 다시 한번 인용해 본다.
그녀는 『틀리지 않는 비결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며, 『인생의 그 무엇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할 대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극도의 절망 중에서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진실과 선의를 지킬 줄 알았으며, 이를 성숙하게 표현함으로써 삶을 개척하였던, 그리하여 그 어떤 낯설고 두려운 환경에서도 주위에 잔잔한 빛과 평화를 가져다주었던 여인, 룻의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이 책의 주요 성격을 개관하여 보자.
명칭
히브리 성서는 이 책을, 등장인물의 이름을 따라, 「룻」이라고 부른다. 이는 「(여자)친구, 동료」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칠십인역과 불가타 역시 이 히브리 명칭을 음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국말 성서도 이를 음역하여 「룻기」라고 부른다.
저술시기
이 책은 판관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판관시대에 제작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1, 1을 참조할 때, 판관들의 시대를 아주 「먼 옛날」로 간주하고 있고, 오래된 관습을 표현하기 위해 보충설명을 달고 있으며(4, 7 이하), 절대적으로 금기시 되었던 이방인과의 결혼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느님의 구원이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방민족까지도 포함된다는 「만민 보편 구원주의」가 부각되고 있어서 상당히 후대에 제작된 책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구약성서가 그러하듯, 언제 제작되었는지 그 정확한 연대를 설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적어도 포로기 이후(기원전 5~4세기)에 저술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문학 유형
이 책의 문학적 유형은 「민간설화」 혹은 「단편소설」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소외된 상황에 던져진 등장인물이 착한 행실과 확고한 신념(신앙)으로 그 고난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아름다운 「해피엔딩」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 구조는, 민담소설의 전형적인 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이야기는 처음에, 노래 혹은 시의 형태로 구전 되다가 차츰 「설화」(이야기)의 형태를 갖추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이방여인의 이야기는 후대에 다윗관련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다윗의 계보(4, 18~22)는 최종 편집자에 의해 후대 첨가된 것으로 간주된다.
다시 말해 룻기는 다윗의 조상 가운데 이방계(모압) 여인이 존재했다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을 섬세하게 신학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설사 이방여인의 신분이었다 할지라도, 그 여인이 어느 유다인 보다 훌륭하고 성실하게 하느님을 섬기며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정통 다윗 왕조의 위상에 가할 수 있는 타격과 불편함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포기하지 말아야 할 희망
벌써 햇수로 2년이 되었나. 재작년에 출판된 필자의 졸서는 「봉인된」 이라는 형용사를 제목안에 달고 있다. 그런데 책을 출판한 이후, 이상하게도 그 제목이 얼마나 불가능하고 불합리한 제목이었는지를 자주 느끼게 하는 사건을 체험하곤 하였다.
결국 작년 내내 나는, 봉인된 진실, 봉인된 시간, 봉인된 시선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것이라는 비관적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새해를 맞고, 룻기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을 수정해본다.
봉인된 관계, 절망스럽게 봉인된 운명이라 하더라도, 거기에서 나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선의와 진실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희망은 있다는 것, 하느님께서는 그 선의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겸손한 마음으로 현재에 충실하다보면 결국에는 죽음의 사선도 용감하게 건널 수 있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새로 시작된 2005년, 모두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해였으면 합니다. 정말, 모두 그렇게, 약속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분명 당신에게 행복한 결과를 약속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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