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니∼임』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매님은 가녀리고 힘겨운 목소리지만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의 표정치고는 너무 편안해 보인다.
고통스럽고 아파하는 환자들의 환한 미소는 건강한 사람이 짓는 미소와는 아주 다르게 가슴이 아리면서도 늘 잔잔한 아름다움을 준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그 자리에 겨우 살아있는 여린 들꽃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가슴 절절한.
원목수녀로 소임받아 일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나로선 훨씬 부담도 적고 쉬운데 하느님께서는 고통의 바다 한가운데에 나를 데려다 놓으셨다. 고통 한 가운데 있는 이들과 함께 동반하는 것이 가끔은 나의 숨통을 조여 올 때가 있다.
장성한 아들을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오열을 접할 때, 사랑하는 남편과 어린아이들을 두고 홀로 눈을 감아야하는 젊은 자매님의 못내 아쉬운 눈빛을 접할 때. 평생 동생 뒷바라지만 하다가 이제 살만하니깐 암으로 세상을 떠나야 하는 동정녀의 삶의 회한을 접할 때, 오직 가족들을 위하여 돈만 벌어 오는 기계로 바쁘게만 살다보니 가족의 정도 한번 느껴보지 못하고 죽게 된 아버지의 슬픈 외로움을 접할 때, 난 어디론가 숨고 싶고 그 자리를 피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곁에서 숨죽여 함께 울어줄 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멍해 있는 가족들의 손을 잡아줄 때, 그냥 다가가 그들의 아픈 가슴을 포근히 안아줄 때, 너무 힘겨워 『악』 소리도 하지 못하는 그들 곁에서 무던히도 기도로써 함께 아픔을 견뎌줄 때 그들은 부족하기만 한 나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다. 나 또한 그런 환우들을 통하여 사랑과 평화를 넘치게 체험한다.
병원은 생명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며 절망과 희망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또한 내적 성장의 장소이며 삶이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한 곳이기도 하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라는 말씀이 아닐까 싶다. 절망과 고통이 많은 곳이지만 그 반면에 희망과 감사가 많은 이곳에서 오늘도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에로 그들을 초대한다.
-이아가다 수녀〈고려대학교 의료원 안암병원 원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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