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홍역을 앓은 적이 없다. 옛날이지만 예방접종을 꼼꼼히 해두신 신식 어머니를 둔 덕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커가면서는 사는게 온통 홍역이다. 새로운 사람, 사건, 환경을 만나기만해도, 매번 홍역을 치르는 듯한 심정이 되니 말이다.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녀들」의 이야기라고 쉽게 방관하거나 타자화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녀들의 고통을 이제는 지켜볼 자신이 없어져서 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살펴볼 나오미의 결단에서는 사랑하는 이들을 자신의 고통에서 지키려는 어머니의 강인한 의지를 만나게 된다.
1, 8~21
대화체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 룻기에서, 제일 먼저 말을 꺼내는 이는 나오미이다. 젊은 며느리들에게 재혼과 새로운 삶을 권유하며 친정으로 돌아갈 것을 부탁한다(9절). 8절의 히브리어 본문을 보면, 나오미가 친정을 「어머니의 집」으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매우 색다른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구약성서는 친정을 「아버지의 집」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룻기 1, 8이외에, 「어머니의 집」은 창세 24, 38과 아가 3, 4에서만 등장한다). 이 표현은 며느리들 역시 아버지가 안계심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JBC, 555), 그 정확한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11~13절에 등장하는 수사학적 질문들은, 며느리들만은 자신의 고통에서 제외시키려는 나오미의 의지를 뚜렷이 부각시켜준다.
특별히 이 부분은 며느리들을 『얘들아』(11절), 『아가』(12, 13절)로 부름으로써, 나오미가 이들을 더 이상 「며느리」로 간주하지 않고 「딸」처럼 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나는 야훼께 얻어맞은 신세란다』라는 13절의 표현은 나오미가 자신의 고통을 얼마나 신학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고통스런 현실을 원망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급작스러운 죽음이나 질병, 재앙을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로 간주했던 이스라엘의 전통적 사고(신명기적 의식)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한 「신명기적 사고」는 욥기를 해설할 때 충분히 설명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언급을 생략하기로 한다.
결국 오르바는 친정으로 돌아가고, 룻만 시어머니 곁에 남는다(14절). 대조되는 며느리들의 결정을 히브리 본문은 「돌아가다」(슈브)와 「남다」(다바크)라는 반의적 동사들을 통해 부각시키고 있다.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고 다시 충고하는 시어머니에게 룻은 『어머니의 민족과 하느님을 따르겠다』고 대답하며, 『죽음밖에는』 그 어느 것도 자신과 시어머니를 떼어놓지 못할 것임을 단언한다(17절). 남편이 죽으면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자동적으로 무산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지만, 룻은 나오미와의 관계를 다시 새롭게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오미는 룻의 결심을 꺾지 못하고 베들레헴으로 향한다(18절).
귀향한 그녀를 보자 동네 여자들은 그녀가 정말 나오미인가? 어리둥절해 하는데(19절), 「나오미」라는 이름이 「사랑스러운 자」라는 뜻을 가지므로, 『그녀가 나오미인가?』라는 질문은 『그녀가 정말 기쁨과 사랑의 사람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이에 나오미는 더 이상 자신을 「나오미」(우아함과 사랑스런 자)라 부르지 말고, 「마라」(괴로운 자, 혹은 쓰라림을 가진 자)로 부를 것을 부탁한다.
1장의 마지막(22절)은 1장 전체의 내용을 정리하고(22절ㄱ), 2장에서 전개될 내용을 암시하는(22절ㄴ), 지능적 구조를 보여준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를 거둬들일 무렵』이라고 제시함으로써, 고통과 기아에 시달렸던 그들의 운명이, 「빵의 집」 베들레헴에서는 「반전」을 맞게 됨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본질
논문을 쓸 때나 읽을 때 가장 많이 발견하는 단어는 「본질적」이라는 단어이다. 꼭 필요한 부분만을 검증해내는 장르가 논문이니, 이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본질, 쓸데없는 것을 다 정리하고 최종적으로 남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삶의 본질」도 한가지이다. 쓸데없는 것을 다 털어내고 나면,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마르타에게 『꼭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라고 하지 않으셨던가(루가 10, 41). 21절에서 나오미는 하느님이 자신을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가장 소중한 것, 즉 「삶의 본질」을 얻어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며느리 룻이야 말로 하느님께서 주셨던 가장 소중한 선물이며, 그들 사이의 깊은 신뢰, 존중,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삶의 본질」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 옆에 있었는데, 정작 나만 깨닫지 못해온, 그래서 고마운 줄을 몰랐던, 내 삶의 본질을, 이제는 알아봐 줘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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