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또 오셨어요?』
나는 깜짝 놀라며 응급실로 실려오는 한 형제에게 다가간다.
『음∼ 많이 아파서요』
고통 때문에 뒹굴지도 못하며 온몸을 비틀고 움츠리며 찡그린다. 벌써 여러번 이렇게 병원에 실려온다 결국엔 술 때문에….
우리병원은 지방공사 서울의료원(구 강남병원)으로 중산층과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곳이다. 특히 연고가 없는 노숙자나 행려시설에 계신 분들이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는 곳으로 유명하다. 다른 병원과 달리 이런 노숙자들도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의 특별한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치료를 받고 떠나도 생활은 변화가 없고 비바람 피해 빈박스와 신문지로 생활하는 이들이 병을 앓고 있는 몸인데도 쉽게 술을 마시고 또 쓰러져 이렇게 실려오는 것이다.
『선생님 아파서 죽겠어요. 살려 주세요!』하면 의사 선생님은 『그렇게 몸도 아픈데 왜 술을 또 드셨어요?』하며 친근한 다그침을 하는 그들의 쉼이 허락된 곳이며 인간의 존엄성이 환대 받고 인격이 존중되며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확인 받게 되는 곳이다.
오랜 노숙자 생활에 익숙해진 초라한 50대 형제가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노숙해 온 그가 어느날 슬그머니 다가와 『수녀님 저도 라파엘로 유아세례를 받았었는데요. 사실 첫 영성체도 못해보고 살았지만 마음 안에는 언제나 천주교 신자예요』 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고 신부님! 수녀님! 하고 반가워하며 두 손을 당당히 내밀고 악수를 청하는 신자들은 그래도 삶과 마음의 여유가 있으신 분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사제, 수도자를 멀리서만 우러러보며 감히 다가서지 못하는 미천하며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우리는 교회의 심장으로 예수님 성모님의 상징으로 먼저 다가가야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행동은 언제나 미흡하여 부끄러움이 앞선다. 겸손하게 하느님께 속한 영적 생활로 주님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비천한 이들 안에서 인내를 배우며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꺾이지 않는 신뢰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열렬한 기대와 마음의 가난을 나누라는 부르심을 되내이며 나는 과연 그들에게 충실했는가를 성찰하게 된다.
라파엘 형제는 『이번에 치료받고 나가면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어요!』하며 다짐한다. 그에게 두손 꼭 붙잡고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용기를 주며 면회 오는 이 없는 외로운 병상을 잠깐이라도 지키며 기도한다. 그에게서 가식없는 아름다운 영혼을 보고 느끼며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그의 약속이 깨져 그가 다시 응급실로 실려와도 사랑의 질책과 반가움으로 맞이하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양애숙 수녀 〈지방공사 서울의료원 원목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