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희망의 전령·가정지킴이’ 돼야
신빈곤 특징은 ‘미래 전망 부재’
가장 훌륭한 먹거리는 ‘희망’
지역특성에 맞는 사목 필요
IMF이후 한국의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잡은 먹거리 나누기 등은 교회가 가난한 이들 가운데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되돌아보게 한다.
# 과부
1급 중증장애를 지닌 어머니 최희진(고로나.82)씨를 모시고 사는 채은희(요안나.43.서울 장안동본당)씨는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어머니와 아이들의 밥상을 준비한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집을 나선 채씨는 집에서 가까운 식당에서 오후까지 무릎이 저리고 손이 부르트도록 일을 한다. 두 남매가 방학이라 집에 있어 그나마 어머니 걱정을 덜고 일을 할 수 있다. 집에 돌아와서도 설거지에 빨래는 기본이고 어머니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 등으로 잠시도 쉴 겨를이 없다. 식당에서 일이 생겼다고 찾거나 파출부 일거리라도 나면 다시 나가야 한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에 올라온 지난 2002년 이후 겨우 마련한 보증금 100만원으로 몇 년째 이어오고 있는 지하단칸방 생활은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파출부나 식당일로 생기는 한달 수입이라야 50만원이 고작이어서 월세 밀리는 것은 일도 아니고 아이들 생일날 미역국 한번 끓이기도 힘들어 누구처럼 파티를 연다는 건 먼 나라 일처럼 들린다.
『어머니 때문에 지하방은 빨리 면해야 되는데…』
커 가는 아이들보다 어머니 걱정이 앞서는 채씨에게 삶의 기쁨을 전해주는 것은 매주 한두 차례 집을 찾아주는 본당 신자들이다. 하루종일 누워지내야 하는 어머니의 말벗이 되어주고, 간간이 전해주는 반찬거리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 모른다. 손 벌릴 데라곤 없는 생면부지의 서울에서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건 답답할 때 속이라도 털어놓을 수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 고아
지난 가을 신자들이 가져다준 김치와 멸치가 전부인 밥상을 앞에 두고 말없이 숟가락질을 하는 손녀 함세미(미카엘라.14.중1)양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머니 단숙자(로마나.78.남양주 금곡본당)씨의 가슴 한 곳으로는 또 한번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지금껏 반찬투정 한번 해본 적 없는 착한 손녀의 앞날을 생각하면 자신이 좀더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세미가 할머니와 단둘이 살게 된 것은 아홉살되던 해, 아빠가 교통사고로 인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뜨고 엄마가 집을 나가면서였다. 이후의 삶은 그야말로 살기 위한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숱하게 이사를 다니다 지금의 단칸방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나마 운이 좋았던 셈이다. 이들의 처지를 아는 주인이 몇 년째 보증금을 올리지 않아 당장은 거리로 나앉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소년소녀가장에게 나오는 정부보조금 25만원이 유일한 수입인 두 식구, 그나마 월세 17만원을 내고 나면 8만원으로 한달을 나야 한다. 외풍이 센 겨울에도 난방비가 무서워 방안에서도 옷을 껴입고 지낸다. 10년 넘게 앓아오는 허리병에 관절염, 고혈압으로 아무 일도 못하는 할머니는 그래서 더욱 자신의 처지가 안타깝다.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미의 말에 할머니의 눈가에는 물기가 비친다. 고인이 된 아빠의 바람대로 수도자를 향한 세미의 꿈을 접게 한 것도 바로 외로움이었다. 간간이 찾는 본당 신자들의 발걸음과 몇몇 본당에서 보내오는 후원금이 세미네를 지켜주는 등불이 되고 있다.
『세미가 주님의 착한 딸로 커갔으면 좋겠어요』
변하지 않는 할머니의 바람을 지켜주는 것은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임을 세미네는 삶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 본당의 지역사회 센터 역할
성서에서 의지할 데 없고 자기 권리마저 주장할 힘이 없는 약자로 나타나는 「과부와 고아」는 사회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로 상징된다. 이런 이들을 가장 먼저 배려했던 초대 공동체의 모습은 교회의 본질을 보여준다. 몸소 낮은 자리로 내려와 사랑을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활동은 필요한 곳에 맞갖은 사랑을 전하는 교회의 사명으로 여겨져 왔다. 이런 교회의 활동은 복잡다단해지는 현대에 들어 더욱 다양한 형태를 띠며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서울 용산본당(주임=김수길 신부)이 지난 2000년 3월부터 운영해오고 있는 「사랑나누기 중계실」은 교회가 서야 할 자리와 몫을 새롭게 돌아보게 한다. 중계실은 신자 개개인의 처지를 잘 아는 구역?반장들이 직접 이웃을 찾아 어려움을 살피고 이를 「사랑의 도움 요청서」에 작성해 내면 본당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필요한 도움을 전하게 된다. 이를 통해 현재 100여명의 장애인과 독거노인들이 매달 10kg의 쌀과 부식을 지원받는 것을 비롯, 60여명의 환자와 재가장애인들이 가정간호제도로 도움을 받고 있다. 나아가 용산본당은 주일마다 국수를 판매해 그 수익금으로 관할지역 내에 방을 마련,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로 내놓는 등 사랑의 지평을 확대해가고 있다.
IMF 이후 한국의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잡은 먹거리 나누기 등도 교회가 가난한 이들 가운데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되돌아보게 한다. 지난 1998년 본당 설립 이후부터 꾸준히 도시락 배달사업을 펼쳐오고 있는 서울 중계본동본당의 활동은 이웃에 대한 조그만 관심이 가닿을 사랑의 대양을 엿보게 한다.
중계본동본당은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이 중심이 돼 매주 목요일 사랑의 도시락 배달에 나서 독거노인을 비롯해 장애인 가정 등 50여가구에 도시락을 전해오고 있다. 어려운 이웃의 처지에 눈이 열리자 나눔은 장학금 지급과 생활비 지원 등 다양한 모습으로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나눔이 일상화되자 신자의사들도 수시로 환자 가정을 찾아 건강을 돌보며 나눔의 결실을 풍성하게 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프란치스코회 신옥균(리나.53) 회장은 『한발한발 다가설수록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며 『예수님이 가난한 이들에게 몸소 다가가 전해주셨던 가장 훌륭한 먹거리는 바로 희망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이렇듯 지역사회의 가난한 이들에게 한발 더 다가서는 교회의 활동은 「미래에 대한 전망 부재」로 특징지어지는 「신빈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될 수 있다. 나아가 희망의 상실로 가족 해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이 때 본당은 교회의 기본이자 사회의 최후의 보루인 가정을 수호하는 지킴이로서 더 큰 십자가를 부여받고 있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자원개발부 문경수(카타리나) 차장은 『교회가 지역사회 안에서 본연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본당이 센터로서의 위상을 먼저 갖춰나가야 한다』며 『교회 내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해서는 인적 자원 개발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회가 지역사회에 한발 더 다가서기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를 통해 지역 특성에 맞는 주민의 욕구 파악이 전제돼야한다는 게 사회사목 관계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와 함께 지역 특성에 따른 적절한 사목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속적인 접근을 통해 사목적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각종 「사회사목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게 일선 관계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되어온 과제다.
문경수 차장은 『사목자의 순환 등으로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사목 영역에서 활동이 단절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목적 노하우를 축적해갈 수 있는 활동 매뉴얼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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