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상실을 알고 있는 사람의 내면은 조용하고 고독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견고함과 강인함이 그를 무리에서 구별시켜 놓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보아즈는 그 많은 일꾼들 틈에서 유독 룻을 알아봐준다. 그 이후로 그는 그녀를 외면하거나 모르는 사람처럼 대할 수 없었다. 그녀의 착하고 맑은 영혼을 이미 보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시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져드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가난하지만 용기를 잃지 않는 견실함이, 고함치지 않고도 세상을 향해 절규하는 슬픔이, 그녀를 군중 속에서 유리시켜 놓았던 것일까.
2, 1~13(2장의 첫째 장면)
2장은 「보아즈」라는 새로운 남성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그와 룻의 첫 만남을 마치 영화를 보듯이 섬세하게 묘사해준다.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찾아간 보아즈의 밭에서, 룻은 양식 이상의 소중한 의미와 희망을 만나게 된 것이다.
1절은 보아즈를 등장시키면서 그를 『남편 쪽의 친척』이며 『엘리멜렉의 일가』라고 소개한다. 이는 룻이 재혼할 가능성이 남아있었음을 암시하는 일종의 복선인데, 구약시대 풍속의 하나였던 「시형제 결혼」과 관련된다.
시형제 결혼이란 일종의 법적제도로서, 후손 없이 죽은 남자의 부인이 남편측의 가장 가까운 친척과 결혼하여 거기에서 태어난 첫 아들을 죽은 자의 자식으로 삼는 제도이다(창세 38장 신명 25, 5~10참조).
물론 당시 이스라엘에서, 룻기가 제시하는 것처럼 이방 여인과의 결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는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민수 25, 1 신명 23, 4 느헤 13, 1 등은 모압인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에 편입되는 것을 철저하게 금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1절이 보아즈를 등장시키는 「도입」의 역할을 했다면 2장의 진정한 스토리는 2절부터 시작된다. 여기서도 대화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데, 처음 말을 꺼내는 사람은 룻이다. 그녀는, 외국인이라 해도 양식을 거둘 수 없는 처지일 때, 남의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을 허용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법(레위 19, 9~10 23, 22 신명 24, 19)을 전제로, 아무 밭에라도 가서 먹을 것을 주워오겠다고 나오미에게 말한다.
베들레헴에 돌아와 특별히 할 일을 얻지 못한 룻은 극빈자들이 생계를 유지하던 방법으로라도 시어머니를 부양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결국 나오미의 승낙을 받아 일을 하러가게 된 곳은 보아즈의 밭이었고(3절), 마침 그 날은 보아즈가 예루살렘에서 돌아와 일꾼들을 만나던 날이었다. 일꾼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 보아즈는 일꾼들 틈에 섞여 있던 룻을 보게 되고, 그녀의 신상을 관리인에게 묻는다(5~6절).
관리인은 그녀가 나오미와 함께 온 모압 여인이며, 『일꾼들이 거두면서 흘린 이삭을 줍게 해달라고 사정』했고, 『아침에 와서 지금까지 앉지도 않고 이삭을 줍고 있다』고 설명한다(7절).
이 언급을 보면, 관리인이 룻의 이름을 직접 소개하는 대신 「나오미의 가족」으로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그녀를 이스라엘적 신분의 사람으로 소개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드러낸다. 이야기를 통해 보아즈는, 룻이 자신의 가문과 「관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는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물론 보아즈가 알게 된 이러한 「관련」을 룻은 아직 모르고 있는 상태이다.
룻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 보아즈는 그녀의 형편을 자상하게 배려해준다(8~9절). 특이한 것은 그가 룻을 『딸아』로 호칭한다는 것인데, 이는 룻을 경시하는 것도, 혈연관계를 전제한 호칭도 아닌, 그저 주인과 일꾼 사이의 호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와 남편을 잃어 그 어떤 보호에서도 제외된 그녀를 「딸」로 불렀다는 것은, 보아즈를 일종의 「책임을 져줄 존재」로 암시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드러낸다.
룻은 주인의 뜻하지 않은 호의에 감사를 표하지만, 동시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 스스로가 고백하듯이 자신은 『한낱 이국여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10절). 보아즈의 배려에 감사하는 룻의 모습으로(13절) 2장의 첫 장면은 마무리 된다.
삶을 새롭게 읽어내는 법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된 성서가 있었나, 할 정도로 룻기는 아름다운 대화로 가득하다.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주인공들의 태도는, 「대화」와 「소통」이야말로 사랑에 이르는 길임을 너무도 잘 제시해 주고 있다. 더욱이 룻은 이방인이었고, 분명한 아웃사이더였기에, 그리고 그러한 신분적 소외는 남편의 죽음이라는 극단적 단절을 통해 삶과 사랑에서까지의 소외로 이어졌기에, 이들의 대화는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절망스런 삶에서 새롭게 하느님의 희망을 읽어내는 법, 룻기가 제시해주는 대화와 소통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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