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한국 주교회의에서 이른바 「뉴 에이지(New Age)」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었다. 뉴 에이지 사조를 경계하라는 충고겠는데, 사실 뉴 에이지는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있어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사조가 특히 영화를 비롯한 제반 대중문화 영역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제 살펴볼 영화들을 통해 「뉴 에이지」에 대한 감(感)을 잡아보기 바란다. 아마 백 가지 이론적인 설명보다 도움이 될 것이다.
2199년, 세상은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가 지배한다. 그들은 인류와 벌인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대기가 불안해져 태양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없게 되자 인간을 에너지원으로 대체한다. 인공지능이 만든 메트릭스(자궁) 속에서 건전지로 사용되기 위해 배양되는 인간, 그러나 자신이 건전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컴퓨터가 조작한 1999년의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 희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일단의 인간들은 컴퓨터의 지배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에 살고 있다. 그들은 비록 가상 세계가 만들어준 문명은 맛보지 못하지만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지켜나가는 진짜배기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희망이 있는데, 기계 문명을 파괴하고 인간에게 지구를 되돌려줄 「그」의 출현에 대한 예언이다. 워쇼스키 형제가 감독한 「메트릭스」(미국, 1999, 공상과학, 136분)에서 앞서 가본 미래이다.
우주에 관심이 많았던 소녀인 앨리는 천문학자로 성장한다. 그녀는 지구 밖에 탁월한 지능을 소유한 생명체의 존재를 믿었고, 그들과의 접촉이 유일무이한 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한 안테나에 낯선 신호가 들어온다. 외계에서 오는 신호는 규칙적인 게 정상인데, 갑자기 엄청난 양의 불규칙한 신호들이 수신되었던 것이다. 신호의 출처는 베가성이었고, 세계의 이목은 신호 해독에 매달리는 과학자들에게 집중된다. 하지만 해독이 어려워 난항을 겪던 중, 의외의 장소로부터 열쇠가 주어진다. 엄청난 갑부인 헤이든은 몸에 생긴 암세포의 활동을 막기 위해 지구 밖 우주선에 사는데, 그는 엘리에게 신호를 평면이 아니라 입체로 보아야 한다는 점, 곧 신호가 우주선의 설계도라는 암시를 전해준다. 로버트 저메키스가 감독한 콘택트(미국, 공상과학, 1997년, 150분)에서 주어진 상황이다.
앞의 두 영화가 가진 공통점은 인류의 미래를 내다본다는 데 있다. 비록 「메트릭스」는 암울하게 내다보고 「콘택트」는 비교적 희망적이지만 장차 엄청난 변화가 찾아오리라고 한다. 이른바 「미래영화」로서, 장르의 특징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셈이다. 세상은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두 영화는 그 중심에 철저히 인간을 세워놓았다. 인류의 파멸은 기계와의 경쟁관계에서 비롯되고, 우주로부터 인류에게 전해지는 선진 문명은 외계인의 앞선 문명으로부터 전달받은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기계가 하느님 노릇을 하고, 적당한 때에 비밀을 전수해주는 외계인이 하느님 역할을 떠맡는 셈이다. 신의 존재는 두 영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미래를 앞서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미래영화를 통해 궁금증을 풀어보려 하는데, 대체로 인간중심적인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뉴 에이지」 영화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인간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박태식(요한.서강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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