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살고 교회가 사는 길
신자들 짐을 덜어주기위한 제도
영혼에 좋은 묘약이며 특효비법
가톨릭신자들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짐스럽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고해성사이다. 사실 고해성사는 가톨릭교회의 소중한 보물이다. 이제 그 진가와 그에 대한 오해와 그 향유의 지혜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두 성인의 증언
고해성사의 진가를 증언해주는 대표적인 성인은 아르스의 성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1786~1859)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고해성사가 한 사람의 영혼만 구해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도 살려낸다는 사실을 훌륭하게 말해 주고 있다.
본래 성적이 좋지 않아서 신학교 시절에 사정 회의에서 쫓겨날 뻔했던 그는 사제품을 받은 후, 아주 피폐한 본당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 곳은 세 가지 병폐로 형편이 없는 시골이었다. 그곳의 신자들은 날마다 만나 맨 먼저 하는 인사말이 저주의 말이었고, 술로 농사 소득은 바닥이 났고, 그나마 남은 재산은 도박으로 날려 버리는 처지였다.
이에 비안네 신부는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께 자신과 본당의 신자 공동체를 봉헌하고, 예수님께서 본당 신부가 되어 주시면 자신은 보좌로 힘껏 도와 드리겠다고 하면서 지혜와 용기의 은혜를 청하였다. 하느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그를 통해 많은 신자들이 회개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고해성사의 은총을 내려 주셨다. 비안네 신부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죄인들의 괴로운 마음을 읽으면서 그들과 함께 내적 고통을 나누었다. 죄인이 고해 중에 울면서 통회하면 비안네 신부도 함께 울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고해소에서 지냈고, 고해성사를 주다가 세상을 떠났다.
비안네 신부는 고해성사 하나만 가지고도 쓰러져가는 본당 공동체를 일으켜 세웠을 뿐 아니라 당시 침체 속에 있던 프랑스의 교회에도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성 요한 보스코(1815~1888)의 일화 역시 고해성사 하나가 어떻게 교회를 살릴 수 있는지 일러주고 있다. 어느 날 몬페라드 지방의 큰 마을 성당에 있는 주임 신부가 성 요한 보스코를 찾아와 발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손을 입맞춤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성인은 그를 일으켜 세우고 『왜 이처럼 슬퍼합니까?』라고 친절히 물었다.
그 주임 신부가 말했다.
『돈 보스코여! 저는 아무래도 본당 주임신부직을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본당에서 아무리 애써 보아도 신자들은 점점 냉담에 빠지고, 주일을 거르고, 독성죄 및 욕설의 죄를 거듭 짓습니다. 돈 보스코여! 제발 당신의 고견을 좀 들려주세요』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습니까?』하고 성인께서 물었다.
『여러 해 전부터입니다. 날이 갈수록 더 고약해집니다』
『기도를 많이 했습니까? 신자들에게도 기도를 하도록 했습니까?』
『물론 한마음으로 기도해봤지만 모두 헛일이었습니다』
『신자들이 성당에 잘 옵니까? 성사를 잘 받습니까?』
『성당에는 그런 대로 오는 셈이고, 성사도 그럭저럭 받는 셈입니다. 그러나…』
『고해성사를 잘 봅니까?』
『아, 그것이 저에게 제일 큰 걱정거리입니다』
이에 성인은 『그러면 이렇게 해 보십시오. 안심하고 돌아가셔서 올바른 고해성사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그것에 대해서 자주 강론을 해 보십시오』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이 열심한 신부는 성인의 권면대로 해보았다. 그로부터 이 신부는 3년 후 성인을 만났을 때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의 권면대로 실행했더니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변했습니다. 교회가 확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신자들로부터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고해는 영혼의 제일 좋은 묘약이며 만병의 특효비법일 뿐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도 기적을 가져오는 성사인 것이다. 고해성사만 잘 한다면 신자가 살고 교회가 살고 나아가 사회가 맑아지게 될 것이다.
용서의 제도적 보장
십자가 제사로 용서를 완성하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사도들에게 나타나시어 성령을 보내 주시면서 그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맡기셨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3).
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의 이 명령을 받들어 고해성사라는 제도를 구비하였다. 이는 거추장스런 의무규정이 아니라 철저히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마련된 권리의 보장책이었다.
이처럼 교회에 맡겨진 용서의 권한에 대하여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작용을 통해서 교회 안에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도록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죄 때문에 죽었던 영혼이 이 교회 안에서 다시 살아나 은혜롭게도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됩니다』
또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350~407)는 사죄권의 특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사제들은 하느님께서 천사들이나 대천사들에게 주지 않으신 권한을 받았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사제들이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것을 승인하십니다』
이 용서의 장치는 철저히 신자를 위한 것이다. 성 필립보 네리(1515~1595)의 이야기가 이를 감동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다.
어느 청년이 습관이 된 불결한 죄를 어떻게 하면 고쳐볼까 하고 성인에게 찾아왔다. 성인은 청년의 말을 듣고, 또한 그의 굳은 결심을 보고는 죄를 사해줄 생각으로,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그러나 또 이런 죄에 빠지게 되거든 즉시 고해하러 오시오』하고 그를 돌려 보냈다.
이튿날 그 청년이 다시 와서, 『신부님! 저는 악마에게 져서 또 같은 죄를 범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 그래요. 통회를 했습니까?』 『예, 신부님. 통회합니다』 『사죄경을 염해 줄테니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그러나 또 같은 죄를 범하게 되거든 즉시 또 오시오』하며 돌려 보냈다.
그는 그 이튿날, 또 그 이튿날 여전히 성인의 발 앞에 엎드렸다. 그는 하루걸러, 이틀 걸러 열세 번이나 같은 죄를 고해했는데 마침내 그 결점을 이겨내고 매우 정결한 청년이 되었다. 그래서 성인은 그를 자기 수도회에 입회시켜 후에 열심한 신부를 만들었다고 한다.
고해성사는 신자들에게 부담스런 짐을 지어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짐을 덜어주기 위해 있는 것이다.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사제들이다. 고해성사를 위해 인내와 사랑을 쏟아야 하는 것은 오히려 사제들이다. 사랑하는 양들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사제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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