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그것이 아무리 작고 사소한 일이라 해도, 하느님의 섭리로 가득 차있다. 룻의 경우도 그랬다. 어떻게 그 많은 밭들 중에서 우연히 찾아간 곳이 보아즈의 밭이었을까…. 이렇듯 우연속에 내재하고 있는 하느님의 섭리는, 동시에 진중한 경고로 작용되기도 한다. 그 사소함을 간과한다면 어마어마한 구원의 섭리를 놓치는 것이 되니까.
2, 14~23(2장의 둘째 장면)
룻기 2장의 두번째 장면은 「식사 때」로 그 배경이 옮겨지면서 시작된다. 보아즈는 그녀에게 직접 빵을 권하기도 하고(14절), 일꾼들에게 일부러라도 그녀에게 이삭을 흘려주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15~16절).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룻은 그날 있었던 일을 시어머니에게 소상히 이야기하는데(17~18절), 나오미는 그녀가 가져온 많은 소득물을 보고, 경작지의 주인에게 감사의 축복을 빌어준다(19~20절).
유사한 축복이 이미 보아즈로부터 그의 일꾼들에게 전해진 바 있으니(2, 4 참조), 결국 보아즈는 복을 빌어준 만큼 복 빌음을 받은 셈이 되는 것이다. 밭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룻이 말하자(19절), 나오미는 그가 그들의 가까운 친척이며, 후원자(고엘)가 될 수 있는 사람임을 알려준다(20절).
히브리어 「고엘」은 죽은 자를 대신해서 그의 모든 재산을 책임지고 보호할 의무(레위 25, 23~28 신명 25, 5~10)를 지는 사람으로, 동시에 모든 것을 소유할 권한을 갖는다. 당시의 관행에서 본다면 여성은 일종의 소유물이었기에, 고엘은 집안의 여성을 책임지고, 동시에 그들을 소유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
나오미는 룻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장소를 확보했음에 감사드리고(22절), 룻은 추수가 끝날 때까지 보아즈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23절).
3, 1~18
보아즈가 룻을 처음 만난 것이 그의 밭에서였다면, 3장에서 그는 이제 그녀를 한밤중, 자기 발치께에서 발견한다. 이 전통적 제스처를 통해 룻은 보아즈에게,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간청하게 된다.
3장 역시 두 여인의 대화로 시작된다. 추수 때로부터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오미는 룻에게 중요한 제안을 한다. 보아즈와의 결혼에 대한 것으로(1~4절), 룻에게 몸을 단장하고 보아즈의 발치에 가서 누워 있으라고 지시한다(5~7절).
룻은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는데(5~7절), 보아즈가 한밤중에 자기 곁에 누워있는 여자를 발견하고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너는 웬 여자냐?』(9절)라는 외침은 그의 놀라움을 잘 표현해준다. 룻은 자기 이름을 밝히고, 그의 옷자락으로 자신을 덮어달라고 청한다. 이는 자신을 배우자로 삼아달라는, 전통적인 프로포즈였다.
「겉옷을 덮는」 행위는 겉옷 소유자의 권리에 종속됨을 상징하는 것으로(1사무 18, 4 1열왕 11, 29~31 참조), 이러한 상징과 「주님의 날개 밑」이라는 표현은 상통적 의미를 갖는다. 하느님의 겉옷(날개 밑)으로 들어가듯이 그분의 강력한 보호권 안에 있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룻의 용기 있는 제안에 보아즈는 야훼께 축복의 기도를 올린 후, 그녀가 나오미의 결정을 따라 준 것에 감탄한다. 그러나 자신보다 시형제 결혼에 더 적합한 친척이 있음을 알려주며, 그 사람이 권리를 포기할 경우, 기꺼이 보호자가 될 것임을 약속해준다.
주도면밀하고 자상한 보아즈는 그녀가 한밤중에 타작마당에 왔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며(14절), 나오미에게 가져다줄 선물(보리 여섯 됫박)까지 챙겨준다(15절).
집에 돌아와서 일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 룻은 특별히 보아즈가 『시어머니께 빈손으로 돌아가서야 되겠느냐』(17절)고 말한 부분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 표현을 통해 나오미가 이제 더 이상 빈손의 여인이 아님을, 즉 룻과 보아즈를 통해 여생이 충만히 채워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그가 오늘 안으로 이 일을 결말짓지 않고는 못 견딜 것』(18절)이라는 나오미의 말은 신속한 결말을 예고해준다.
상생(相生)의 원칙
새 국회가 출발될 무렵 모두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말은 「상생」(相生)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교묘히 서식하고 있던 「적자생존의 원칙」을 발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적자생존의 원칙에서 보자면, 평화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관념이요, 이상일 뿐이다. 동일한 시?공간 아래 살아가는 둘 혹은 다수사이의 정면충돌은 사실상 불가피한 것이며 그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 승-패의 긴장은 이미 정해진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룻기는 「상생」이 결코 허상이 아님을 제시해준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투쟁이나 경쟁이 아니라, 사랑과 배려임을, 등장인물 서로에 대한 깊은 공감을 통해 확인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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