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가난을 조금씩 깨닫습니다”
재개발지역 주민 애환·고통 함께 나눠
“가난은 물질 아니라 자신을 버리는 것”
서울에서 마지막 재개발 지역이라 할 수 있는 하월곡동에는 현재 부분적으로 아파트 건립 공사가 한창이다. 대형 건설업체 로고가 선명한 아파트들이 골조를 세우고 제 모습을 잡아가고 있는 한편 한 블록만 비켜서면 철거를 앞둔 허름한 주택들이 언덕을 메우고 있다.
이곳 하월곡동 3동 산 2번지에 팻말을 달고 있는 「해뜰집」은 작은형제회(관구장=오상선 신부)가 1년여전 만든 공동체다. 가난함을 추구하는 작은 형제회의 카리스마대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고자 하는 기대가 있는 곳이다. 20평도 채 못되는 집 공간에는 부엌을 겸한 거실을 두고 기도방 공동방 침실 등이 나름대로 아기자기 하게 꾸며져 있다.
나카무라 미치오 신부(한국명 나도생.64)는 이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3명의 수사중 한명, 자칭 「해뜰집의 주부」다. 다른 수사들이 학교에 가거나 기관단체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집안 살림을 돌보고 한글 공부를 하거나 주변 독거노인들 집에 「마실」을 가는 것 등이 주된 일과다.
기자가 해뜰집을 찾았던 날도 나카무라 신부는 인근 양양금(안젤라.84) 할머니 집을 방문, 철거 걱정에 한숨을 내쉬는 안젤라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지난 1996년 한국에 와서 햇수로 10년째 한국 생활을 하고 있는 그이지만 아직 할머니들의 사투리는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아 고민이다.
올해로 사제서품 40주년을 맞는 나카무라 신부가 늦은 나이에도 불구 한국행을 택한 것은 오사카에서 본당사목 중 만났던 재일 교포들과의 인연 때문. 오랜 시간 차별의 어려움을 견디며 살아온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한.일 관계나 정의, 평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마침 관구장의 권유도 있고 해서 한국 관구에서의 생활을 결심했다.
해뜰집을 지원한 것은 설립목적 대로 「가난한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원의에서다.
해뜰집의 존재는 이웃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진 상태. 주일이면 성당가기가 불편한 몇몇 할머니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먹을 것이 생기면 함께 나누는 생활 속에서 이젠 신자가 아닌 이들과도 친숙한 이웃이 됐다.
얼마 전에는 한 비신자 할머니가 집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해뜰집을 찾아 물을 나눠 달라고 청해온 적이 있었는데 『정말 지역 사람들과 하나가 된 것 같고 삶을 나누게 된 것 같아 흐뭇했다』는 소감이다.
『한국어 실력이 모자라 할머니들과 대화를 원활히 할 수 없다는 점이 섭섭하죠. 대부분 글을 모르시니까 기도문 등을 가르쳐 드리고 싶어도 어려움이 많네요. 요즘은 봉사자들과 함께 방문해서 기도를 하곤 해요』
나카무라 신부가 해뜰집에 살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가난함 속에서 발견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배워야 해요. 그래야 평화를 느낄 수 있어요. 그것은 가난한 이들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내안의 이기심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내려 오셨듯이 그리스도의 향기인 우리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먼저 다가서는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 권유로 성당을 찾게 됐고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에 매료돼 수도회 문을 두드렸다. 『지금껏 수도생활을 하면서 수도자로서의 삶을 한번도 실망하거나 후회한 적은 없었다』며 『수도자로 사는 것이 참 행복하다』고 털어놨다.
『가난하게 살려고 해뜰집에 왔지만 사실 부족하나마 없는 게 없어 정말 가난하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그는 『1여년 동안 해뜰집에서 지내면서 가난은 물질이 아니라는 점도 절실하게 체험했다』고 말했다.
『하느님께서 내 안에 사실 수 있도록 얼마만큼 나를 버릴 수 있느냐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 가난의 모습이라는 것을 요즘에서야 조금씩 깨닫는 것 같다는 그는 이곳에 와서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더 느끼며 산다고 밝게 웃는다.
『봉헌생활은 그리스도와 함께 성가정처럼 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일」이나 「사도직」에 앞서, 30년간 성모님과 함께 지내셨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잘 살펴 그 뜻을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가정생활을 하는 이들이 자녀와 가정을 돌보기에 앞서 일에만 신경쓴다면 제대로된 가정이 될 수 있을까요. 수도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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