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 죽음의 행진후 나가사키에서 순교
2) 26위 순교성인
1596년 가을 기리시탄에게는 일대 불상사가 된 「싼 훼리뻬 호 사건」이 일어났다. 그 배에는 막대한 적하물과 각 수도회 신부들이 타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장군 히데요시는 적하물 몰수, 승무원 감금, 선교사 포박이라는 불법을 감행하고, 1596년 11월에 일본 내에 있는 기리시탄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미 선교사 추방령과 금교령이 있었는데도 공공연히 전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시 오사카와 교토에 있던 프란치스코회 베드로 바우티스타 신부 외 5명과 신도 15명, 오사카에 있던 예수회 수사 바오로 미키(三木)와 도쥬쿠(同宿=수도예비자) 2명이 체포되었다. 「금지된 기리시탄을 믿고, 그 교를 퍼뜨린 죄」였다.
체포된 24명은 1597년 1월 3일 귀를 잘리고 교토 시내를 끌려 다니면서 온갖 조롱과 침 뱉음과 돌팔매질을 당한 후, 교토에서 오사카를 거쳐 나가사키까지 800㎞의 「죽음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손은 뒤로 묶인 채, 비와 눈을 맞으며, 흙탕물과 먼지투성이의 험한 산길을 걸어, 옷은 헤어지고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귀에서는 피가 나고 발은 퉁퉁 부어 올랐다. 이들 중에는 12세 루도비코와 13세 안토니오도 있었다. 24명이 시모노세키에 도착했을 때 교토로부터 따라온 두 사람을 기리시탄이라는 명목으로 포박하였다. 두 사람은 순교자의 영광을 받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포승을 받았다. 이리하여 26인이 되었다.
26인 순교자 대열이 나가사키의 니시사카(西坂) 언덕에 도착한 것은 2월 5일 아침이었다. 『우리들의 아버지시여』 『데우스』 『마니피캇』 등의 찬미가를 부르며 26인은 십자가에 매달렸다.
바오로 미키는 기쁨에 차서 모인 군중을 향하여 설교를 하였다.
『여러분 나는 일본인 예수회 수사입니다. 기리시탄을 믿고 전파하였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합니다. 이 은혜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간절히 원하건데 다이코 님(히데요시를 말함)을 비롯하여 여러분들이 기리시탄이 되어 구원되시길 바랍니다』
12세의 소년 루도비코는 십자가 에 매달려 옆구리에서 반대편 어깨를 관통하는 창칼을 받고 『천국 천국』이라고 하며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서 숨을 거두었다.
1597년 2월 5일 26분의 순교자는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 위에서 지상의 생을 마감하였다. 형장 주위에 있던 기리시탄들은 앞을 다투어 순교자의 유물을 손에 넣기 위하여 달려갔다.
26분의 순교자들은 1627년, 29년에 시복되었고 1862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시성됐다. 현재 니시사카 공원에는 26위 순교성인 기념관과 기념성당이 있다.일본 나가사키 니시사카 공원에 있는 26위 순교성인 기념관.
박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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