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수녀회 본원에 돌아오면 새삼 느끼게 되는 풍요로움이 많다. 우리 수녀회의 지청원자들과 수련자들은 아침 미사 후에, 수녀원 마당에서 체조를 한다. 체조라고는 국민체조 밖에 모르는 나에겐 젊은 수녀님들의 신식 체조도 새로운 것이지만, 그 다음에 틀어주는 음악이 낯익은 것이어서,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랄라 우리들의 소풍~, 랄라 줄을 맞춰서면~, 그렇게 시작하는, 초등학교 시절 모두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던 바로 그 추억의 노래(?)였다. 소풍날, 이라…. 하느님께서 주신 매일을, 마치 은총의 소풍날로 여기며 시작하는 후배들의 풋풋한 모습에서,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하던 나의 하루를 반성할 수 있었다. 보아즈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 룻의 하루하루도, 은총과 축복의 소풍날 같지 않았을까.
4장
보아즈는 룻에게 친족의 의무를 다하고 싶어 하지만, 법적으로 그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음이 일종의 장애로 등장한다. 4장은 이 부분의 해결을 위해, 다음날 아침, 법적소송을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보아즈는 성문 법정에서 이를 소송하는데(4, 1), 당시 「성문」은 마을의 모든 사법적 사건들이 처리되던 공적장소였다.
보아즈는 열명의 장로들 앞에서 「아무개」(새번역)라고 하는 친족에게, 예전 엘리멜렉의 토지를 매매할 것을 제안하는데(레위 25, 25 예레 32, 7 이하 참조), 익명의 친척은 이를 쉽게 수락한다. 그러나 이어 보아즈는 엘리멜렉의 소유물 중의 하나였던, 과부가 된 며느리와도 결혼할 것을 제안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한다(6절). 왜냐하면 룻과의 결혼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사들인 땅을 룻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다시 양도해야함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고인의 이름을 그의 소유지 위에 세워주어야 하네』(5절)라는 보아즈의 말은, 나오미로부터 사들인 땅을 매입자 자신이 소유하지 않고, 다시 그 가문의 것으로 넘겨야함을 상기시킨다. 수지가 안 맞는 거래임을 깨달은 익명의 친척은 권리를 신속히 포기한다(6절). 이렇게 하여 「고엘」이 가지는 권리와 의무는 모두 보아즈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양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친척은 보아즈에게 신을 벗어주는데(8절), 흥미로운 것은 본문 자체가 이에 대한 해설을 달고 있다는 점이다(7절). 이는 룻기가 상당히 후대에 저술된 작품임을 암시한다. 당시의 독자들도, 이 상징적 제스처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기에 이를 상세히 설명해 줄 필요가 있었음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어떤 조약이나 협정이 개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질 때, 요즘처럼 악수를 하거나, 조약서를 작성하는 대신, 신발 한 켤레를 서로 교환함으로써 이를 증거 했다. 신발은 지배와 소유를 상징했기에(시편 60, 10 참조) 신을 벗어주는 행위는 소유권의 양도와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이어 보아즈는 룻과도 결혼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10절). 증인으로 참석했던 원로들은 이제 보아즈에게 축복의 기도를 빌어주며, 이스라엘 역사에서 시형제 결혼을 통해 큰 업적을 남긴 여인들(라헬과 레아의 관계, 다말 이야기 등)처럼 하느님 앞에 축복된 삶을 꾸려나가기를 기원해준다(11~12절).
13절, 드디어 그들의 결혼은 성사된다. 룻은 이제 더 이상 가난한 이방 여인이 아니라 지방의 유지, 보아즈의 아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인물은 나오미이다.
룻은 다윗의 조부 오벳을 낳았다는 보도를 끝으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나오미의 「인생역전」만이 장황하게 서술되기 때문이다(14~17절). 본문은 「빈손」으로 시작되었던 나오미의 불행이 하느님의 축복으로 「가득 채워짐」을 제시한다. 먹을 것이 없던 그들에게 음식이 보장되었고, 보호자가 없던 그들에게 배우자도 생겼으며, 무엇보다도 남편과 아들을 「잃었던」 나오미는 이제 자손을 「얻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가장 적절한 축복을 베풀어 주신 것이다.
자기 자리를 참아내기
이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사람은, 자기 자리를 「참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다. 어머니로서, 며느리로서, 각자를 규정해 주는 자리를 무던히 참아낼 것…. 남편이 죽고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을 때조차, 룻이 흔들리지 않고 그 불행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리(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신원의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룻의 이러한 과감한 용기와 인내는 나오미의 강건함과 사랑에서부터 기원했다. 그만큼의 훌륭한 표양으로 시어머니로서의 자리를 참아 내지 않았다면 룻이 정말 그녀 곁에 남아 있었을지 의문으로 남기 때문이다.
룻기 초반부에 유독 반복되고 있는 히브리 단어는 「돌아가다」(슈브)이다. 각자가 자기 신분으로 「돌아가」 그 자리를 잘 「참아낼 때」, 소풍날 같은 매일 매일의 축복은 보장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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