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작품 …. <“안녕하세요? 저는 최혜영 수녀입니다”>
제작, 촬영, 편집: 아무개
내레이션: 아무개
- 많은 사람들이 걸어 왔고, 걷고 있는 길만을 걸어야 정상적인 인생이라 할 수 있을까? 여기 그렇지 않아도 행복하다 말하는 한 수녀가 있다. 최혜영 수녀님, 그분의 삶,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이유를 알아보자.
이 거창한 다큐의 홍보 기사는 지난 가을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육방송국이 제작한 방송제 「Must Choose」에 출품한 작품의 해설이다. 누가 보면 이 주인공이 굉장한 인물인가 싶겠지만 사실은 천만의 말씀이다. 경위를 설명하자면 복잡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얼결에 학생들의 실습 작품에 모델이 되어 준 셈이다.
무거운 촬영 도구들을 번쩍 들고 보무당당(步武堂堂)하게 나타난 여학생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나로서는 큰 결심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섰건만, 친숙하지 않은 기계 앞에서 주눅이 들고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가톨릭 신자도 아닌 학생들이 「선택」이란 거창한 말을 떠올리면서 수도자는 좀 특별한 선택을 한 사람으로 생각되었던 모양이다. 이것저것 묻는 말에 대답하고 몇 번의 야외촬영까지 하면서, 요즈음 학생들은 「선택」이란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소화할까 호기심이 생겼는데 나중에 작품을 보니 대역배우까지 써서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 넣었다. 이야기가 너무 밋밋해서 극적 효과를 노린 모양이다.
드디어 방송제가 열리던 날, 꼭 참석해 달라는 당부에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공동체 수녀님들과 함께 행사장에 들어섰더니 방송국 학생들은 나를 잘 아는 듯 반갑게 맞아준다. 구색은 다 갖추어서 학교 어른들의 축사도 있고, 작품들도 「선택」이란 주제에 맞춰 훌륭하게 만들었는데, 관객은 얼마 안 된다. 나는 학생들이 애써 만든 발표회에 관객이 너무 적은 것이 마음이 쓰이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하기가 민망하여 좀 일찍 자리를 뜨고 말았다. 나중에 듣자니까 2부에 마련된 초대가수와의 시간과 뒷풀이에는 꽤 많은 학생들이 참석한 모양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정작 작품을 만든 학생은 관객의 수 따위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었다. 그저 자신이 다른 학생들과 함께 멋진 작품을 만들었다는 데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며 자랑스러워할 뿐이었다. 부모님께서 오셨느냐고 했더니 나중에 비디오로 보여드릴 것이라고 한다. 솔직히 두 번 다시 이런 모델 노릇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새로운 경험을 시켜준 그 멋진 학생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기발랄하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젊은이의 파트너가 된 것만으로도 나에게 더 큰 영광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싸이월드(인터넷 홈피)에 들어가면 저마다 당당한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세계를 개방한다. 수업 시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학생들의 기발한 생각과 꿈들을 만날 수 있어 즐겁다. 기성세대가 꿈꿨던 민주주의의 이상, 평등과 자유는 이렇게 주체 의식이 분명한 젊은이들에 의해 일궈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보화를 발견한 듯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서 새로운 희망이 느껴진다.
최혜영 수녀(가톨릭대 종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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