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 치유의 카리스마 실천
정신병자로 오해받아 병원서 채찍질당해
병자 정성껏 돌보기 위해 자선의 집 마련
스페인 콤포스텔라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천주의 성 요한은 더욱 기도와 묵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 그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아프리카 수타 지역으로 떠나게 됐고, 여기서 잠시 생활하다 그라나다로 돌아와 엘비라 성문 옆에 성물 가게를 열고 책과 십자가, 성물 등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이후 천주의 성 요한은 본격적인 회심의 생활로 접어드는 전기를 마련한다. 1539년 1월 20일 성 세바스티아노 축일을 맞아 「순교자들의 암자」 성당을 찾은 요한은 성 세바스티아노가 보였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과 용기에 감명을 받고 성인전을 여러 차례 탐독하면서 보다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요한의 변화된 삶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켰고 정신병에 걸린 것으로 여겨졌다. 왕립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모든 시설이 열악한 이곳에서 작은 방에 갖혀 옷을 벗긴 채로 모진 매를 맞는 등 치료라고 할 수 없는, 학대에 가까운 대우를 받아야 했다.
기둥에 묶어놓고 채찍으로 때리는 것이 미치광이를 치료하는 가장 일반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던 당시였다.
그같은 비참한 생활 안에서도 요한은 다른 환자들을 배려했고 그들이 좀 더 편안하고 양호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은 무엇이며 하느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병원에서 퇴원한 요한은 이미 45세의 나이에 접어든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해야할 어떤 일에 대한 의문은 계속되고 있었다.
퇴원과 함께 영적 지도자인 아빌라의 요한 신부를 찾아간 그는 요한 신부의 지도로 1개월간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졌고 이후 과달루페 성모성지로 순례를 떠났다. 그곳에서 요한은 3개월 동안 예로니모회 수도회들이 운영하는 병원 및 의학 학교에 머무르며 병자 간호에 필요한 기본적인 일들을 배웠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당시의 병원들이 오늘날 볼 수 있는 병원들과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명색은 병원이었으나 병을 치유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병을 전염시키고 키우는 곳이라 설명될 수 있었다.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울 정도의 지저분함과 더러움의 대상이었고 의학적 지식의 측면도 형편없을 정도였다.
요한이 입원했던 그라나다의 왕립 병원도 별 다를 바가 없어 병자들과 노숙자들과 떠돌이들이 북적거리고 있었고, 진심어린 간호나 봉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불쌍한 이들은 더욱 더 불쌍하게 됐고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임종을 재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539년 12월말 요한은 모아진 돈과 지원금 등으로 루세나 길(Lucena-Gasse)에 「자선의 집」을 개원했다. 베네가스(Venegas)라는 은인의 도움으로 빌린 2층 건물이었다. 또 그라나다의 주교는 침대와 담요를 사도록 비용을 지원했다.
요한이 병자들을 돌보는 방법은 당시 병원 사정을 감안할 때 매우 특이한 것이었다. 가난하거나 범죄자이거나 무일푼이거나 사기꾼이거나 불량배를 가리지 않고 환자들을 동등하게 대했는데 이러한 모습에 대해 사람들은 놀라기도 했고 한편 영혼의 소리를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그는 자선의 집에 기거하는 사람들을 위해 매일 거리에 나가 음식과 구호 물품을 구걸했고 후원자들을 찾아 그라나다외 여러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다. 세사 공작 부인은 요한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며 평생 은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요한은 또 잠시 그라나다에 머물고 있던 당시 왕국의 총비서 돈 세바스찬 라미레즈 주교에게 병자들을 위한 도움을 청했고 이 주교는 상편에서 언급됐듯 요한에게 「천주의 요한」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하사했다. 수도자에게 어울리는 새로운 수도복을 입도록 명하는 것과 함께.
1546년 말경 안톤 마르틴과 페드로 벨라스코에 의해 그라나다 고멜레스 언덕에 두 번째 병원이 세워지는 것을 지켜본 요한은 1550년 3월 8일 「철저한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는 그의 업적을 마감한다.
1630년 9월 21일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시복된 그는 1690년 10월 16일 교황 알렉산데르 8세에 의해 시성됐다.
교황 레오 13세는 병자와 병원을 위한 천상의 수호성인으로, 교황 비오 11세는 1930년 병자를 돌보는 사람들과 그들의 협회들을 위한 천상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또 교황 비오 12세는 1940년 그라나다를 위한 제2의 수호성인으로 정했으며 1953년에는 스페인의 소방수를 위한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한편 천주의 성 요한의 정신에 충실하면서 시대적 표징에 일치하는 방법으로 병자 치유를 위한 카리스마를 실천하는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는 1571년 교황 비오 5세에 의해 공동체로 인정됐고, 1586년 교황 식스토 5세에 의해 정식 수도회로 승격됐다.
수도회는 특히 개발도상국 등 전 세계에서 200여개의 병원을 열고 있으며 장애인 노인 노숙자 만성병자 등 소외된 이들을 위한 치료와 각종 사회복지시설 등을 운영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