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연륜이랄 것도 없고 아직은 인생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는 나이를 살고 있지만 때때로 순간순간 주어지는 하느님 부르심의 의미를 생각하며 인생의 겨울을 생각해본다.
늘 푸른 젊음이 계속될 것만 같은 착각으로 적당히 내 방식대로 엮어가는 나날을 살다가도 이런 날에는 이 세상 삶이 영원할 것 같은 허상을 깨고 발밑을 뒹구는 교만, 이기심, 명예욕, 무관심들을 만난다. 혹시 소명 받은 이 삶 안에서 늘 헛손질하는 삶을 연속 시키고 있지나 않은지, 상대방의 상태를 무조건 내식으로 사랑한다고 열을 올리고 있지나 않은지….
세상에서는 철지난 게임기인 두더쥐 잡기! -그러나 이곳 주간보호소 어르신들의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요긴하다. 순발력과 집중력을 키워주고 손힘도 키워주는 유익함이 있기에….
『자, 숙련된 조교의 시범이 있겠습니다!』
방망이를 제대로 맞은 두더쥐가 『아야! 왜 때려! 아프단 말야!』 이렇게 외치는 소릴 들으며 한바탕 웃음꽃이 피어나고 자신 없어 하면서도 기꺼이 동참하는 어르신들 모습이 아름답다. 최선을 다해 막무가내(?)의 열정을 보이시지만, 두더쥐가 세상 구경 다하고 고개를 안으로 집어넣고 나서야 뒤따라가며 방망이질을 하면서도 그 신기함에 마냥 즐겁게 동심을 키워 가신다. 웃음은 보약! 이렇게 오늘은 일주일 치 웃음을 다 웃은 것 같다.
치매 뇌졸중을 비롯한 노환으로 여러 사람의 보호와 수발이 필요한 이 상황을 어느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는 삶의 연장이기에 묵인할 수만은 없다.
두더쥐에게 헛 방망이질하듯 희미한 기억의 세계를 계속 잃어가는 우리 어르신들.
이 어르신들의 상태를 알아 가면서 한동안 참 많이도 왜? 왜? 를 반복하며 혼란스러웠지만 차츰 이제는 안쓰러움 보다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세계를 인정해 가고 있다. 비록 우리가 보는 견지에서는 잔존기억이 하느님조차 의식하고 있지 못하는 상태처럼 보이지만 하느님과 그 영혼만이 통교하는 어르신의 세계가 존재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묵주기도로 삶을 엮어 오신 어르신이 오늘도 묵주를 잡고 혼자만의 기도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며 기도로 내면화 되고 습관화 된 행동은 변함없이 우리의 무의식 세계를 주도해 간다는 것 그래서 순간이 이어진 평소의 우리 삶이 가지는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무성하던 기억의 초록 잎이 단풍잎 되어 떨어져도 또 다른 희망의 세계를 위해 겨울을 나고 있는 나무들처럼…. 어르신들도 이제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이다.
한점 숨김없이 가지만 앙상히 남아있는 겨울나무의 모습으로….
-김정숙 수녀 〈포항 성모자애원 햇빛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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