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존중” vs “범죄예방” 팽팽
논의 물꼬… 반대여론 돌파가 관건
사형폐지위한 다양한 노력 전개해야
국회가 2월 18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상정, 심의에 착수함으로써 사형제도를 둘러싼 국민적 논의에 새로운 물꼬가 틔워졌다.
이 법안은 현행 국내 17개 법률에 명시된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가석방이나 감형 없이 수형자가 사망할 때까지 형무소에 구치하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형제 폐지를 목적으로 한 특별법안은 지난 15대에 이어 16대 국회에서도 정대철 의원 등 여야 의원 155명의 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바 있다.
그러나 앞서의 법안들은 종신형 도입 부분이 빠져 있어 범국민적으로 논의의 수위를 높이는데 한계를 드러냈고 이로 인해 법사위에 상정도 되지 못해 자동 폐기된 바 있다. 따라서 이날 법사위의 사형폐지법안 상정은 국회 차원에서 처음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상정 후 법안심사소위로 회부된 특별법안은 국회 재적의원의 절반이 넘는 여야 의원 175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된 상태여서 산술적으로만 볼 때는 법안 통과에 어려움은 없는 상태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법안의 상정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되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심의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또한 아직까지는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할 뿐 아니라 상당수 의원들이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고 있어 법제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앞으로 상임위 차원에서 사형제 폐지에 대한 공청회 등을 열어 사회 각계의 여론을 수렴할 계획이다.
유인태 의원은 『법사위원 15명 가운데 10명이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이어서 과거처럼 국회 차원에서 논의도 못해 보고 폐기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빠르면 4월 임시국회에서, 늦어도 올해 안으로 사형제도에 대한 표결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법제화로 가는 길에는 적잖은 난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사형제도에 대한 인식문제다.
지난 2003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5.9%, 지난해 7월의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에서는 66.3%가 사형제 존치를 주장해 전국민의 3분의 2 가까이가 사형이 있어야 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주무부서인 법무부도 사형제 존치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어 적지 않은 사회적 진통이 예상된다.
결국 존치론자들이 주장하는 극악범죄 예방효과와 폐지론자들이 내세우는 오판의 가능성, 생명의 존엄성 등을 둘러싼 국민 여론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가 법안 통과여부를 가름하는 관건이 될 전망이다.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장 이영우 신부는 『사형제도의 존립 여부는 「시민사회의 성숙」을 보여주는 잣대』라고 강조하고 『우리 사회 주체들이 스스로를 성찰함으로써 지속적인 자기부정과 자기발전을 통해 사형 폐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희년 계기로 범종교적 운동으로 확산
심포지엄·연극제 등 다양한 활동 펼쳐
■국내 사형제도 폐지운동 약사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우리 사회의 행보는 수십년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그간 사형제도 폐지운동이 소수 지식인 계층이나 인권운동가,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해있던 사형제도 폐지운동은 2000년 대희년을 계기로 범종교적인 운동으로 확산됨으로써 범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하나의 뚜렷한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를 전후해 가톨릭교회는 사형을 안락사나 낙태 등과 함께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죽음의 문화」일 뿐만 아니라 범죄 예방 차원에서도 현실적이지 못한 제도로 지적하고 궁극적으로 사형제도의 완전한 폐지를 목적으로, 이에 앞서 2000년 한해만이라도 집행을 중지하자는 운동을 전 세계적으로 펼친 바 있다.
한국교회는 2001년초 개신교, 불교 등 타 종단과 함께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연합」을 구성해 사형제도 폐지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찾는가 하면,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산하에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를 설치해 5월 23일 첫 모임을 가진 이후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있어 의미있는 디딤돌을 놓아오고 있다.
특히 이 때를 기점으로 국내는 물론 일본, 대만 등 아시아지역 국가들과의 연대가 이뤄지기 시작해 2001년 11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아시아 포럼을 통해 한국이 아시아지역 사형제도 폐지의 선봉에 서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후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주축이 된 범종교연합은 심포지엄 등 학술 프로그램을 비롯해 연극제, 음악제, 미술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사형제도에 대한 대중적인 여론을 일깨우며 사형제도 폐지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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