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십자가 지고 하느님 따라
맨발의 가르멜회 기초 이뤄
반대파 비난을 수련 기회로
『모든 것을 맛보기에 다다르려면, 아무것도 맛보려 하지말라. 모든 것을 얻기에 다다르려면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말라. 모든 것이 되기에 다다르려면 아무것도 되려고 하지말라 … 너 있지 않은 것에 다다르려면 너 있지 않는 데를 거쳐서 가라. 아직 다다르지 않은 것에 다다르려면 도중 아무 것에도 발을 멈추지 말라』(십자가의 성 요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함께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한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 1542∼1591)은 1568년 11월 28일 두명의 동료와 함께 아빌라의 데레사 도움으로 두루엘로에서 개혁된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십자가의 요한」으로 이름을 바꾸고, 가르멜회 최초 규칙으로 돌아가 실천하겠다는 서약을 함으로써 맨발의 가르멜회의 기원을 이뤘다.
이후 십자가의 성 요한은 23년간의 개혁 가르멜회 생활을 통해 가르멜회 회원들에게 영성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예언자 엘리야 보다 훨씬 더 많은 영성적 영향을 드러냈다.
「만약 누구든지 나를 따르고자 한다면 자신을 버리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마태 16, 24)는 말씀은 곧 그의 생애의 표현」이라고 할 만큼 십자가의 성 요한은 자신의 생활에서 「십자가」의 실현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보였다. 그의 영성은 한마디로 사랑 자체인 하느님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 것이었다.
1542년 스페인의 아빌라 인근 폰티베로스에서 태어난 요한의 삶은 21년간의 세속생활, 5년간의 완화 가르멜에서의 생활, 그리고 개혁 가르멜회에서 살았던 시기로 구분된다.
본래 조상은 명문 귀족이었으나 가세가 몰락, 요한이 태어날 당시에는 매우 가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태중에 있을 때 아버지가 사망, 유복자로 세상을 본 요한은 모친이 정착한 메디나에서 목수의 조수 등으로 일하다 메디나 병원에 채용돼 간호사 일을 하기도 했다. 이때 병원 전속 사제가 되려는 생각으로 예수회가 경영하는 신학교로 통학했던 그는 1563년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게 됐고 살라망카 대학에서 철학 신학 공부 후 156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의 가르멜회 환경과 생활 방식에 만족하지 못했던 요한은 고향집을 찾았다가 아빌라의 데레사를 만나게 되는데 이 일은 그에게 일련의 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가르멜 수도회 생활보다 더욱 고적하고 깊은 기도 생활이 요구되는 카르투지오회로 옮길 것을 털어놓았던 그는 성요셉 수도원을 설립 개혁 작업을 시작하고 있던 데레사로부터 개혁 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게 된 것이다.
두루엘로에서의 새 생활은 엄격한 금욕, 극기와 고행의 생활 등 가르멜 수도회 본래의 은수적 관상적 수도 생활 실천으로 요한을 이끌었고, 한편 맨발로 마을내 부락을 돌아다니며 사도직을 수행했다.
이런 가운데 1577년 요한은 개혁을 반대하던 완화 가르멜회 수도자들에게 납치돼 톨레도 수도원 다락방에 감금되는 사태를 맞는다. 이곳에서 9개월간 지내면서 요한은 갖은 모욕과 학대를 묵묵히 참아냈고 오히려 자신의 덕을 쌓는 계기로 삼았다.
동료들에게 배척당하고 「순명하지 않는 자」로 비난받는 고통스런 경험속에서 그는 여러 편의 시를 탄생시켰고 이후에는 그 시를 설명하고 해설하기 위한 저서들을 남길 수 있었다. 「로망스」 「내 그 샘을 잘 아노니」와 「영혼의 노래」 일부가 이때 쓰여진 것이다.
감옥에서 탈출한 요한은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하엔의 엘 갈바리오, 그라나다의 로스 마르티레스 수도원의 원장직과 안달루시아 관구장직을 역임하고 가르멜회 제1평의원, 세고비아 수도원 원장직도 맡는 등 활동을 벌였다.
맨발의 가르멜회는 1579년 교회의 공식 인정을 받았으나 이후에도 개혁을 둘러싼 가르멜회의 분쟁이 재현되면서 요한은 반대자들에 의해 계속적인 비난 공격의 대상이 됐다.
1591년 6월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멕시코로 향하던 그는 열병에 걸려 스페인에 남게 됐고, 9월 우베다 수도원으로 옮겨진 후 정신적 고통과 병세 악화로 4개월만에 눈을 감았다.
사랑의 부르심을 받은 인간의 소명이 무엇인지 꿰뚫어 보았다. 또 이 소명에 충실히 응답하는데 모든 영혼들을 인도하기 위해 영적인 가르침들을 펴고자 했다.
저서들을 통해서는 사랑이 인간의 최종적이고 유일한 소명이라는 사실과 사랑이 인간 실존에 총체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 또 사랑이 인간의 실존을 하느님을 향한 점진적인 여정으로 변모시킨다는 것을 드러냈다. 특히 「어둔 밤」 등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는 인간이 하느님을 올바르게 찾고 사랑하는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학자들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삶과 저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너희가 참으로 살고자 한다면 십자가에서 도망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1675년 교황 글레멘스 10세에 의해 시복됐으며 1726년 교황 베네딕도 13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또 교황 비오 11세는 1926년 교회 학자로 선포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3년 스페인 언어권의 모든 시인들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