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태생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안식일 규정을 어긴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았고, 예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러면 우리들도 눈이 멀었단 말이오?』하고 대들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하고 대답하셨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밤에 한창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정전이 되고 초나 등 마저 없을 경우를 당한 경우를 회상해 보자. 얼마나 답답하고 난감하겠는가?
잠시동안 어두움도 이렇게 견디기 힘든데 태생소경은 부모님의 모습 한번 보지 못하고 어두움 속에서 일생을 살아야만 하니 얼마나 안타깝고 애처로운 일이겠는가?
만일 그에게 전 재산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단 하루만 눈을 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마 가족들과 빛과 색채와 만물을 보고 싶어 전 재산을 포기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육안 외에도 심안과 영안이 있다. 육안은 가장 차원이 낮은 눈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심안과 영안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조차 갖지 않고 육안에만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육안이 필요하고 소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때로는 심안과 영안의 장애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스님들은 득도하기 위하여 벽을 향하여 가부좌하고 참선을 하는 것이고 우리는 묵상을 하거나 깊은 사색을 할 때에 육안을 지긋이 감는다.
일찍 엄마를 여의고 설악산 오세암에서 몸 붙여 살던 어린 남매의 대화중에 『누나! 난 엄마가 보고 싶어』하는 동생에게 『그러면 눈을 감어. 그러면 엄마가 보여』라고 대답하자, 동생은 눈을 감고 잠시 있더니 『누나, 정말 엄마가 가물가물 보여』라는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몇 년 전에 어떤 여대생이 나를 찾아 와서는 울면서 하소연을 하였다. 자기는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데 당뇨가 온 후로 자꾸만 실명되어 가니 어찌 했으면 좋겠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에게 계속 치료를 받으면서 기도회에 열심히 나오라고 말해주었고 그는 내 말대로 치료받으면서 기도회에 열심히 다녔건만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어 완전실명되고 말았다.
그는 다시 나를 찾아와서 『신부님 말씀대로 따랐는데도 왜 하느님께서 안 들어주셨습니까?』하고 항의하였다.
나는 그에게 심안과 영안을 더 밝게 해 주시느라고 육안이 어두워지는 것을 용인하셨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당신의 육안은 우리의 육안보다 어둡지만 당신의 심안과 영안은 분명히 우리의 것보다 더 밝을 거라고 달래서 보냈다.
그 후로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공부를 계속했고 많은 작사 작곡을 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작사 작곡 중에서도 「빛이 없어도」라는 CD와 「아름다운 미사곡」은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태생소경은 예수님께로부터 육안만 치유받은 것이 아니라 영안까지 치유받은 것이다.
그렇기에 네 눈을 뜨게한 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유다인들에게 『분명히 내 눈을 뜨게 하여 주셨는데 그 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도 모른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 그 분이 만일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도저히 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당당히 확신에 찬 증언을 하게 되었고 예수께서 그 후에 그를 만났을 때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하고 물으시자 『주님, 믿습니다』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던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교만이 가득 차 있고 우리의 관심과 욕심이 엉뚱한 것들에게 쏠려 있을 때에는 심안과 영안은 어두워져서, 태생소경의 눈을 뜨게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면서도 그 분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 뜬 소경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눈들은 밝은가를 한번 검안해 보자.
허성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상담〉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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