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사순절은 언제나 「바람」과 함께 연상된다. 봄이 올 것도 같고, 이미 와있는 듯도 한데, 사순절에는 언제나 거칠고 매서운 바람이 불었었다.
그 스산한 분위기는 성주간만 되면 절정으로 고조되어 기습적으로 눈발까지 날리고, 흐린 창밖의 앙상한 나무들은 바람에 어지럽게 흔들리기도 했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사순절의 의미를 처음 알게 된 후 맞게 된,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성금요일 오후 3시는, 그때까지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낯설음과 어둠을 마주보게 했던 시간이기도 하다. 어렸었지만 고통은 살아있는 것이었나 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어렴풋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사순절이 시작된 지 이미 오래이다. 이번 주부터는 사순시기에 주로 낭독되는 「애가」를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개관
애가는 룻기, 아가, 코헬렛, 에스텔과 함께 「다섯 개의 축제 두루마리」로 불리는 「메길롯」에 속해있다. 이 책들의 특징은 각각의 고유한 전례 기념일에 낭독된다는 것인데, 애가는 히브리 달력으로 아브월(대략 7∼8월) 9일, 「예루살렘 함락사건」을 애도하는 기념일에 봉독되었다.
이런 전통이 그리스도교에 그대로 유입되어, 애가는 주로 사순시기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성주간에 낭독된다. 예루살렘 함락이라는 비극적 사건 대신,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애도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제목
이 책의 히브리어 제목은, 1장 1절에 등장하는 히브리어 「에카」이다. 이는 고통스러울 때 저절로 나오게 되는 탄식소리로, 「아아!」, 「아이고!」 등을 의미한다.
이 제목은 그리스어 번역인 칠십인역에서 「쓰레노이」(슬픔의 노래, 조가 弔歌)로 조정되었고, 라틴어 성서에서는 「라멘타씨오네스」 (Lamentationes 탄식, 애도)로 번역되었다.
라틴어 성서는 이 제목 외에도 그리스어 「쓰레노이」를 그대로 음역한 「쓰레니」(Threni)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어 번역은 칠십인역과 라틴어성서의 제목을 번역하여 「애가」(哀歌)로 부르고 있다.
저자
칠십인역과 불가타 성서는 이 책을 예레미야서 뒤에 배치시켜 놓고 있다. 이러한 배열은 애가의 저자를 예레미야로 간주하는 고대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애가를, 「예레미야의 애가」라고 부르기도 한다(시나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의 경우). 이러한 입장을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는 듯, 칠십인역은 애가 1, 1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고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고 예루살렘이 사막으로 변하자, 예레미야는 주저앉아 눈물지으며 예루살렘을 위한 애가를 부르며 말하였다』 라는 문장을 덧붙여 놓고 있다.
애가의 저자를 예레미야로 보는 전통은, 예레미야가 유다의 임금 요시야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가를 지었다고 보도하는 2역대 35, 25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별히 역사학자 플라비우스 요셉푸스는 예레미야가 요시야를 위한 조가를 부를 때, 앞으로 있을 두 번의 예루살렘 파괴(바빌론과 로마에 의한)를 예고하였다고 설명함으로써 예레미야 저작설을 암시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서의 전반적 논지가 애가의 논지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예레미야가 이 책의 저자라는 확실한 근거를 애가의 내용 안에서 발견하지 못하기에, 학계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애가를 구성하는 다섯 개의 노래들은 서로 그 형식과 기조를 달리하기에, 동일한 출처를 주장하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일부학자들은 이 책이 여러 저자들의 기록을 모아 놓은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애가는, 바빌론 포로기에 대하여 별 구체적 언급이 없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팔레스티나와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팔레스티나에 남아있던 레위 그룹에 의해 제작된 작품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저자에 대한 정확한 단정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따뜻한 바람
자주 바람이 불고 검은 먹구름까지 덮이는 사순절이지만, 성주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햇볕도 따스해진다. 이상한 일이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 세상 모든 죄가 소멸되고 나면, 그러면, 바람의 방향도 바뀌는 것일까. 따뜻한 남쪽의 바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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