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는 예수님의 현존이다
성체 통해 예수님 체험할때
전생애적 총체적 치유 받아
앞에서 이미 일곱 성사에 깔려있는 핵심정신으로서 성찬의 원리, 곧 성체의 의미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이제 성체(聖體) 자체에 초점을 맞춰볼 차례다.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다음과 같은 고백은 성체(성사)의 중요성에 대한 강력한 웅변이다. 『이 세상의 선한 모든 일을 합하여도 성체성사(=미사)의 가치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행은 사람의 업적이지만, 성체성사(=미사)는 하느님의 업적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발견
늘 습관처럼 대하던 것이 전혀 새롭게 느껴져 올 때가 있다. 경이의 환희, 경탄의 기쁨은 발견하는 자, 깨닫는 자, 깨어있는 자의 몫이다. 누구든지 어느 날 문득 영안(靈眼)이 열리면 이인복 마리아님의 체험담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세례받은 지 30년 후, 로버트 드그란디스 신부님의 「미사를 통한 치유」를 번역하고 나서야 미사를 치유의 전례로 알게 되었습니다. 대구대교구 은혜의 밤에서 말씀 봉사를 마친 후 파견미사에서였습니다. 거양된 성체를 우러르며 강렬한 주님 현존감 때문에 『예수다!』 하며 땅에 엎드렸습니다. 사제가 성체분배를 마치시고 내 앞으로 오시어 『마리아! 고개 드세요』 하셨습니다.
『이 죄인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30년을 『성체는 예수래!』 하며 겁 없이 모셨는데 『예수님이시다!』 하고 고백하자, 송구하여 성체를 모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제가 다시 『순명하세요!』 하시어, 나는 『예수님! 순명하기 위해 고개를 드오니,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했습니다. 그 때 분명히 가슴에서 피어올라 세포 알알이 퍼져 나가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리아야! 네가 더러우니 나를 먹고 너를 정결하게 하는 것이지, 네가 정결하다면 나를 먹을 필요가 없다. 나는 죄인을 위하여 세상에 왔노라』. 그 날, 나는 전생애적이고 총체적인 치유를 받았습니다.
이렇듯 미사는 치유의 공간이요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성체를 모신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한 피붙이요 살붙이가 되는 기적의 식탁입니다』(2004. 6. 13자 서울주보, 이인복 마리아, 나자렛 성가원 원장)
『성체는 예수래!』와 『예수님이시다』는 전혀 다른 것이다. 미사를 의례적으로 참례하다 보면 성체 모시는 일이 무덤덤해져서 『성체는 예수래!』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기 십상이다. 물론, 그래도 우리의 영육에 예수님께서 들어오신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신다. 우리를 거룩함에로 이끌어 주신다.
하지만 우리가 불현듯 『예수다!』, 『예수님이시다』하며 성체를 모시게 될 때, 우리 안에서 놀라운 치유가 발생하게 된다. 이인복님의 증언처럼 『전생애적이고 총체적인』 치유가 일어난다.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시는 예수님께 대한 갈망과 경탄이 당신의 마음을 열어 성체의 생명력이 더욱 크게 발현되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렇다. 성체는 예수님의 확실한 현존인 동시에 우리를 위한 생명력이며 치유력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요한 6, 54~58).
우리는 『예수님이래!』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하루하루가 『어이구 예수님!』하는 경탄의 날이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거행하고, 공경하고, 관상하라
성체성사는 확실히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을 이룬다. 2004년에 반포된 교황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공경하고 관상하는 삶(17~18항)이라고 단정?권고하고 있다. 이는 지나친 단순화가 아니다. 그대로 사실에 부합하는 언급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권고가 의미하는 바를 하나씩 짚어보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성체(성사)가 매일의 삶의 일부가 될 만큼 자주 거행하는 것이 당위이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커다란 은총이다. 하지만 아무리 귀한 보물이라 해도 그것을 잘 살펴보지 않으면 그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사를 드릴 때, 우리가 온 마음과 정성을 기울여 드리지 않는다면 미사의 진정한 가치를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게 되고, 미사를 통하여 받는 은혜를 온전히 받아 누리지 못하게 된다. 미사 안에서 하는 말이나 행위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한다면 우리는 그 「표징들」 안에 들어있는 구원의 신비를 맛보고, 예수님의 현존을 감동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성체를 특별히 공경해야 마땅하다. 미사에 참례하여 성체의 신비를 생생하게 느낀 사람은 미사 거행에서든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체 공경에서든 성체를 향한 말과 몸짓, 자세, 행동에 신경을 쓰게 된다. 성체에는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다. 지극히 거룩한 성체 안에 『교회의 영적 전 재산』(전례헌장 10항)이 내포되어 있다. 성체는 『영생을 위한 약이요 죽지 않게 하는 해독제이며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하는 빵』(가톨릭교회교리서 1405항)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체를 특별한 경외심으로 공경할 줄 알아야 한다. 공경의 표로써 우리는 미사 거행에서나 성체 조배에서 침묵한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심장 박동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마음의 고요 가운데 깊은 존경으로 성체를 대하기 때문이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성체를 시시각각으로 관상함으로써 성화의 은총을 누린다. 성체 안에 실제적으로 존재하시는 예수님을 느끼려는 사람은 미사전례에서 뿐만 아니라 수시로 성체조배를 하게 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나가 가지는 마음이며 욕심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사랑에 빠져버린 사람은 한번이라도 더 성체를 모시고 싶어 하고, 성체 앞에서 그분의 끝없는 사랑을 느끼려고 노력하게 된다. 물론, 이 때 관건이 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토마스 데 아퀴노 성인은 그리스도의 참다운 몸과 그리스도의 참다운 피가 이 성사 안에 계시다는 것은 『오관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권위에 근거한 신앙으로써 알게 된다』고 말한다. 『엎디어 절하나이다.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하느님/ 두 가지 형상 안에 분명히 계시오나/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삽기에/ 제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옵니다. (하략)』(가톨릭교회 기도서).
성체는 그리스도인이 매일 먹어야할 양식이며, 마땅히 무릎 꿇고 공경해야 할 예수님의 가시적인 형상이시며, 보고 싶을 때마다 만나야할 구원과 성화의 현존이시다.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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