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었다. 개강도 했고 근무지인 광주에도 다시 내려왔고 해서, 어느 지인께 안부 전화를 드리게 되었다.
어떻게 지내세요? 라는 나의 의례적인 인사에, 응…. 살아있어…. 라는 대답이 차분하게 들려왔다.
살아…. 있다니? 전화기 저편의 고요함은 엄살 많고 호들갑스럽던 내 목소리의 거품을 단 한번에 걷어내기 충분한 것이었다.
살아있다는 것, 도대체 무엇이 살아있는 것일까? 수없이 자문해온 화두이기도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단 한번도 답을 찾아내지 못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통화이후 돌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무 가식이나 포장 없이 매순간 스스로에게, 그래, 살아있어, 라고 미소 지으며 대답할 수 있는 것, 그런게 아닐까라는….
애가는 유다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것(즉 예루살렘)을 잃은 후에야 비로소, 삶이 무엇인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게 되면서 제작된 일종의 「신학적 반성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후에야 비로소 이전에 누리던 삶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 삶과 운명이 가지는 본질적 비극은 아닐는지.
제작 연대
애가에는 유배가 시작되던 당시의 정황들이 상당히 섬세하게 기록되어있다. 바빌론의 무차별한 살육과 남은 자들이 겪는 공포, 폐허가 된 예루살렘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지(기원전 587년) 얼마 안 돼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섯 편의 애가 모두 각기 다른 시기에 저술되었다는 의견도 간과할 수 없는데, 각각이 제시하는 배경과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애가의 용도
이스라엘의 고유기념일 중의 하나인 「티샤 베아브」(성전파괴 기념일)는 이스라엘 달력으로 「아브」달(대략 7~8월) 제9일(티샤)에 지낸다. 유다인들은 서기 6세기이후부터 이날에, 제1성전 파괴(기원전 587년, 바빌론에 의하여)와 제2성전 파괴(서기 70년, 로마에 의하여)를 기억하고 슬퍼하며 애가를 낭독해왔다고 한다.
티샤 베아브
2열왕 25,8~9과 예레 52,12은 제1성전이 파괴된 날을 각각 아브달 7일과 10일로 제시한다. 그러나 몇몇 열왕기사본과 루치아노의 칠십인역본, 그리고 랍비전통에서는 7일부터 성전외곽이 파괴되기 시작하였고, 성전 본건물이 파괴된 것은 9일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다인 전통은 「재난의 날」을 9일로 설정해왔다. 탈무드 전승에 의하면, 공교롭게도 제2성전이 파괴된 날도 역시 아브달 9일이어서, 이 날이 가지는 비극적 의미를 중첩시키고 있다. 이날, 유다인들은 단식을 지키고, 목욕, 기름 바름, 향수 등을 금하고 가죽신을 신지 않는 것으로 애도를 표시한다.
경전성
애가의 경전성이 문제로 제기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만큼 내용이 신학적이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경전상의 위치」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다른 입장이 존재한다. 히브리 성서에서 애가는 「성문서」에 해당되는 「메길롯」에 속해있지만, 칠십인역과 라틴어역에서는 예레미야 예언서 다음에 등장한다. 즉 「예언서」 부분에 속해 있는 것이다.
구성
애가는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섯 개의 조가(弔歌)형식을 띄고 있다. 1~5장은 모두 22절(단, 3장 제외)로 되어 있는 일관성을 보여주는데, 히브리 알파벳 순서에 따라 노래를 이어간다(단, 5장 제외). 이러한 알파벳 기법은 시편(9~10 2 34 37 11 112 119편 등)과 잠언(31, 10~31)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암기를 용이하게 한다.
삶의 붕괴가 주는 의미
애가가 묘사하고 있는 「예루살렘의 파괴」는 곧 이스라엘의 「몰락해가는 신앙」, 「무너진 자아」에 대한 결정적 경고였다. 하느님의 징벌은 인간의 방자함에 대한 경고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통이 다가왔을 때, 그렇게 다시 한번 삶이 무너질 때,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이건 또 무슨 미련함과 죄에 대한 경고인지를.
온갖 가식과 장식으로 서로를 사로잡으려 혈안이 되어있는 21세기 오늘, 그런 병든 열정과 경쟁 때문에 번번이 실망하고 번뇌하며 비난받아 왔으면서도 아직 헤어나지 못한, 그런 무력한 나 자신을, 오랜만에라도 마주하게 하기위해, 그분은 우리에게 고통을 선물로 주신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일격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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