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졌을 때, 세상이 주는 허황된 희열에 더 이상 속지 않게 될 때, 그렇게 철저하게 고독한 상태에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맨얼굴을 보여주는 존재가 있다. 바로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이다.
『야훼여, 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아주십시오. 애가 타고 가슴이 미어지는 듯합니다』(애가 1,20)라고 절규하는 예루살렘의 고통은, 그러므로, 자신의 참 얼굴을 만나기 위한, 마지막 은총이요 기회였다고도 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는 더 이상 잃을 게 없을 때에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전반적 내용
애가의 지배적 분위기는 「비애」이다. 다섯 개의 조가(弔歌) 모두 「죄에 대한 자각과 고백」을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장, 예루살렘의 참상
1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별되며, 전반부(1~11절)에서는 예루살렘의 찬란했던 영화와 현재적 참상이 대조되고, 후반부(12~22절)에서는 예루살렘의 내면적 고백이 표현된다.
1, 1~11(전반부)
1절은, 한 때 사람들로 북적이던 예루살렘이 이제 「과부」가 되어 혼자 앉아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미 룻기에서 충분히 설명되었지만, 과부는 유다사회 안에서 가장 비천한 신분의 존재였다. 그 어떤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과부가 된 예루살렘은 『위로해줄 친구도, 연인도 없는』 상태(2절)를 통해 자신의 철저한 고립을 호소한다. 친구들이 모두 「원수」가 되어버린 상황, 그것이 바로 애가가 제시하는 탄식과 애도의 주원인이었던 것이다. 5절에는 이러한 불행의 원인이 「이스라엘의 죄」 때문임이 처음으로 명시된다. 그들의 죄 때문에 하느님은 고통을 내리셨고, 결국 그들의 아이들까지도 포로가 되어 적 앞에 끌려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6~7절에서는 과거 찬란했던 시온의 영화가 현재 얼마나 처참하게 되었는지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시온의 죄는 많은 이들에게 혐오를 주었고, 예루살렘 자신에게도 환멸스런 것이었다. 시온은 부정이 자기 옷자락에 묻어 있는데도 그 종말을 생각하지 못했고(9절), 그 결과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성소」까지 유린당하게 되었다(10절). 먹을 것이 없어, 급기야 패물을 음식과 바꾸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자 예루살렘은(11절), 비로소 주님께 간청을 드리게 된다.
1, 12~22절(후반부)
이제 예루살렘은 화자(話者)가 되어 직접화법으로 「하느님에 대하여」 언급하고(12~19절), 「하느님께」 직접 호소한다(20~22절). 모든 명사가 성(性)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에서, 도시가 의인화 될 때는 일반적으로 「여성」으로 은유된다. 따라서 예루살렘은 한 여인의 목소리로 자기 신변의 변화를 호소한다.
예루살렘(시온)은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보다 더 불행한 처지가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질문한다(12절). 이어 이스라엘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으신 하느님의 행위가 길게 나열되는데(13~17절), 그분은 그들에게 불을 보내시고, 그물을 쳐놓아 낚아 채셨으며, 모든 것을 황폐케 만드셨다. 그들의 목 위에 멍에를 올려놓으셨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군대를 동원해 예루살렘을 치셨다. 『이런 일을 당하고도 나 어찌 통곡하지 않으리오』라는 16절의 절규는 예루살렘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잘 표현해 준다.
그러나 18절에서는 이러한 하느님의 강력한 일격이, 사실은 매우 「정당한 것」이었음이 제시된다. 그분이 나(예루살렘)를 대적하여 짓밟으신 이유는 『내가 그분의 명을 거역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참에 빠진 시온은 시급히 애인들을 불러보기도 하지만 곧 그들의 배신을 뼈저리게 체험한다(19절). 이 모든 실패를 통해 결국, 예루살렘은 그녀를 도우실 분은 하느님 한분뿐이심을 깨닫게 된다(20~22절).
옷자락에 묻은 부정
애가 1장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구절은 「옷자락에 묻은 부정」을 알지 못한다는 9절의 말씀이었다.
사실, 내 스커트에 무엇이 묻었는지, 자기 자신은 쉽게 알아낼 수가 없다. 남들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눈치 못 채고 있는 부정, 죄, 이기심, 야망….
이런 비극적 모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가가 제시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자신의 옷에, 그리고 얼굴에 묻은 것들이 얼마나 혐오스런 것들인지를 깨달으라는 것, 그리고 그것 때문에 뼈저린 고통이 주어지겠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바로 그 고통의 끝에는 부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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