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배아 희생 막아야 생명문화·교회입지 진전
생명윤리법 관련 헌법소원에
개신교와 연대 전력투구해야
예수부활대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뒤 부활하심으로써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것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가장 중요한 때이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류는 생명을 얻었고, 우리는 그 생명을 더욱 풍요롭게 가꿔야 할 소명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생명을 경시하고 살해하는 죽음의 문화가 만연해 있다. 특별히 발달된 의과학은 그 원래 뜻에 어긋나게, 오히려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생명윤리 분야에서 첨예한 논란이 되어온 인간 배아 복제를 막는 것은 생명을 꽃피워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요청이다.
생명의 시기인 부활을 맞아, 생명권이 짓밟히고 있는 인간 배아들, 그 생명의 외침에 대해 살펴본다.
누가 배아를 살해하는가?
해묵은 이야기이지만, 지난 2001년 10월 한 시민단체에서는 한 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9225명의 인간 배아, 그들이 사라졌다」라는 이 보고서의 제목은,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따라 하찮은 문제로 치부될 수도 있고, 혹은 「홀로코스트」에 준하는 대량 학살 행위의 혐의가 씌워질 수도 있는 문제이다. 즉, 인간 배아를 하나의 온전한 인격을 지닌 생명 존재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그저 실험실에서 현미경 아래 온갖 폭력과 테러를 당해도 무방한 세포 덩어리로 간주하느냐의 문제이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실시한 이 조사의 대상은 인간 배아의 행방이다. 조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 핵심은 많은 배아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1만여개씩이나. 실제로는 그보다도 훨씬 많을 것이지만.
일련의 계산법을 적용해 본 결과, 1997년 12월말 현재, 냉동보존된 배아의 수를 계산해보면, 계산상 1만 5968.9명이 옳다. 하지만 대한산부인과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그 수는 불과 6744명이다. 따라서 통계상 9224.9명의 냉동배아가 사라진 셈이다.
이들 냉동배아들이 어떤 운명에 처해졌으리라는 것은 비교적 자명하다. 추측건대, 이 배아들은 실험실에서, 현미경 아래에서 날카로운 메스에 찢겨나가고 온갖 화학물질을 뒤짚어쓴채 소리 없는 비명 속에서 살해됐을 것이다. 생명윤리학자들이 말하듯 『현미경적 폭력의 시대』에서 연약한 인간 배아들은 거대한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대형참사 왕국인 우리나라에서, 금세기 최대 규모의 참사는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이다. 1970년 여객선 남영호 침몰이 323명, 1993년 서해 페리호 침몰이 292명, 1953년 창녕호 침몰이 229명이었는데 1997년 대한항공기 괌 추락사고가 229명으로 같은 수의 희생자를 기록했다.
이 모든 기록들을 다 더해도 실험실에서 사라져가는 이 땅의 인간 배아들의 수에 비길 바가 아니다. 더군다나, 이 배아들은 살해된 뒤에도 살해범들에게 그 책임을 묻지도 않고, 묘를 만들어주지도, 비석을 세워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애쓰지도 않는다.
생명이 아니란 말인가?
그러면, 과연 이들은 이렇게 취급받아도 되는 존재인가? 이들 인간 배아는 과연 생명이 아니란 말인가?
배아 실험을 지지하는 이들은 배아가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다 자란 태아를 60여만명이나 낙태 시술로 죽이고 있는 나라에서 사람도 아닌 난자와 배아를 좀 이용한 것이 무슨 문제인가』라고까지 할 정도로 독선에 사로잡혀 있다.
대개 「생명의 시작」에 대한 이론들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 하나는 인간 생명의 시작이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되는 순간부터(가톨릭교회 교리서 2319항, 2322항 참조)라는 것이다. 이는 이미 교회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는 주장으로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배아를 잠재적 인간으로 보는 입장이고, 세 번째가 배아를 단지 세포 덩어리로 간주하는 관점이다.
교회는 여기에서 단 한 가지, 수정으로 이미 하나의 온전한 인격을 지닌 생명이라는 입장 외의 모든 주장을 배격한다. 이는 교회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의사와 학자들도 지지해온 것이다.
문제는 생명과학의 발전과 함께 그 분야에서 기대되는 막대한 규모의 금전적 이해가 결부됨에 따라, 배아를 실험도구로 간주함으로써 기대되는 생명과학의 산업, 혹은 상업적 이해에 따라 생명의 시작에 대한 엇나간 주장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가장 자주 애용하는 것이 이른바 「수정 후 14일」 논쟁이다. 인간 생명의 시작을 수정 후 원시선이 나타난다는 14일 이후로 잡는 이 주장은 인간 배아를 실험실의 희생물로 삼으려는 일부 반생명적 과학자들의 요구와 이를 공리주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부와 기업이 공모해 만들어낸 넌센스인 것이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인 이창영 신부는 『만약 인간생명이 수정란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훗날 과학적으로 확증된다면, 그 동안 국가가 주도해서 초기 인간 생명인 배아를 살해한 것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하고 묻는다.
반생명적 생명윤리법
인간 배아를 생명이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사람들은 마침내 배아 실험 허용을 입법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지난 2000년 처음으로 법 제정을 공표한 이후 4년여 동안 진행, 올 1월 발효된 법의 입법 과정을 보면 생명과학계와 산업계, 정부의 각고의 노력이 빛을 발한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할 만하다.
범국민적인 합의로 이뤄낸 인간 복제 금지 조항들은 입법 과정에서 사라졌고, 막판에는 일부 정부 부처와 생명과학자와 생명산업계의 강력한 돌파력에 힘입어 배아 복제 실험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내는 방향으로 법이 제정됐다.
입법 과정상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법률 내용만으로도 그 반생명적이고 농후한 사기성이 엿보인다. 법은 두 가지 목적을 표방한다. 하나는 인간 존엄과 가치 및 인체의 보호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이다. 전자는 생명윤리 및 안전의 확보를 요하고, 후자는 난치병 예방 및 치료술 개발로 이 두 가지 수단은 자칫 모순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생명윤리법이 생명과학기술 개발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난치·불치병 치료의 미명 아래 생명의 존엄성과 생명윤리에 대한 고려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인간 배아 복제 실험을 허용함으로써 난치·불치병 치료를 꾀하고, 그 치료술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생명과학산업이라는 미래산업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선진 생명과학 기술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 바로 이 사기극의 전모이다.
여기에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고려는 상실돼 있으며, 따라서 이를 일러 「생명윤리법」이라 부르는 것은 국민들을 상대로 한 판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반생명을 위한 법적 제도를 완비한 정부는 이미 충분히 영웅이 된 극소수 생명과학자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생명윤리법 입법이 진행되고, 발효를 기다리고 있는 시점에서조차 배아줄기세포 연구 성공 소식을 알리며 득의양양, 일약 한국 바이오 산업의 영웅으로 떠오른 한 과학자는 언론 칼럼에서 『바이오 코리아』를 건배했다. 그리고 정부는 그들에게 2012년까지 모두 151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와 생명산업계는 생명수호의 주장들을 몰상식한 「발목잡기」로 몰아가면서 「생명윤리법」의 세련된 지휘 아래 우리나라를 인간 배아의 무덤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정부는 유엔이,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해도, 그 원칙으로 천명한 모든 형태의 인간 복제 금지 선언조차도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는, 엇나간 자신감을 표명할 만큼 막 나가고 있다.
생명 수호의 깃발을 올려야
우리 사회에서 「생명 문화」 진영은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바이오 코리아」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압도한 형국이다. 이 시점에서 교회는 결연한 생명 수호의 깃발을 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최근 개신교측과의 긴밀한 연대 안에서 추진되고 있는 생명윤리법 관련 헌법 소원에 힘을 모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열린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에서도 주교단 전체의 뜻으로 모아졌다. 헌법 소원의 추진 과정에서 교회내의 법, 생명과학, 의학, 생명윤리 전문가들의 전폭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며 신자들의 깨어있는 의식과 지지가 요청된다.
아울러, 신자들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고 이에 따라 교육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많은 조사를 통해서 볼 때, 생명 윤리 문제와 관련해 신자들의 의식 수준은 심각하다. 낙태를 비롯해 안락사, 이혼, 인공수정, 생명과학 등 생명윤리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가르침이 정작 신자들 사이에서 제대로 인식과 실천이 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신자 일반에 대한 생명윤리 교육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특히 아쉬운 부분은 신자 전문가, 즉 신자 과학자와 의학자들의 몫이다. 교회는 크고 작은 의료 기관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신자 과학자와 의사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작 생명윤리 논쟁에서 교회 입장을 대변하고 고군분투하는 이들은 윤리신학자들을 포함한 일부 성직자와 관계자들뿐이다. 정작 나서야 하는 신자 전문가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해당 분야의 전문가 집단 내에서의 입장과 이해관계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적어도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는 전문가들과 그들의 연합 기구 등을 통해서 교회의 입장과 자신들의 신념이 피력된다면 교회의 가르침은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 안에서 생명윤리와 관련해, 특히 생명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새로운 윤리 문제들 가운데, 인간 배아 복제 문제는 그 핵심을 차지하고 있으며, 상황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있다. 만약, 교회가 여기에서 인간 배아의 희생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생명 문화는 크게 후퇴할 것이고 교회의 윤리적인 가르침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양보해도, 생명 존재로서 인간 배아의 그 생명의 외침만은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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