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설립·사제양성 가장 고마운 일”
경갑룡(요셉) 주교가 오는 4월 6일, 21년 동안의 대전교구장직에서 정년퇴임한다. 아침부터 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히 내린 17일 오전 교구청 내 교구장 집무실에서 경주교를 만났다.
『매스컴이나 기자들에게는 미운털이 박혔지』
인터뷰를 안하기로 유명(?)한 경주교에게 이번 인터뷰는 매우 이례적인 일. 그래서 연유를 물었더니 조금은 엉뚱한 대답이 돌아온다. 곧 이어 『그러잖아도 하자고 하고선 또 뭘 그러나 싶어서 후회했다』며 환하게 웃는다.
4월 6일 교구장직 물러나
경갑룡 주교는 4월 6일 오후 2시 충무체육관에서 거행되는 유흥식(라자로) 주교의 제4대 대전교구장 착좌식때 퇴임식을 갖고 대전교구장직에서 물러난다. 1984년 8월 29일 대흥동성당에서 착좌식을 가진 후 만 20년 8개월만이다.
경주교는 『홀가분하고 해방된 기분도 든다』며 소감을 밝혔다. 『그동안 과오없이 교구장직을 수행해온 것을 하느님께 감사하고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평소 이미지 만큼이나 굵고 짧은 소감이다.
경주교는 1984년 7월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에서 대전교구장으로 발령을 받고, 그해 8월 교구장에 착좌했다. 부임 당시 대전교구는 본당 53개에 신자수는 8만9000여명. 사제 수는 100명이 채 안되었다. 그러던 것이 2004년말 현재 본당 108개, 신자 수 24만명, 사제 수는 230여명으로 늘었다.
또 교구 신학교와 종합대학병원, 다양한 피정·교육시설 등을 갖춰 경주교의 재임 기간 동안 대전교구의 외형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부임할 당시 참 암담했다』는 경주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대전교구는 신자수, 사회복지, 사회사목, 교육 등 모든 부분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할 수 있다 자신감 심어
이 가운데 경주교가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단연 「대전가톨릭대학」의 설립이다. 『교구에서 일할 사제를 우리 손으로 길러보자는 꿈을 갖고 욕심을 냈지. 각 지역마다 그렇겠지만 대전교구도 지역 특성이라는게 있어요. 공소가 많고 농촌지역이 많은 이곳 신부를 서울 한복판에서 교육시킨다는게 어려움이 많지. 그래서 대전교구의 힘으로 신학교를 건립하기로 맘먹었지요』
주변에선 불가능하다고 했고, 그래서 반대도 많았다. 경주교는 교구 사제들을 찾아다니며 교구신학교 설립의 취지를 설명하고 협력을 부탁했다. 때론 「오기」로 밀어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속내는 『우리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사제, 그래서 여기서 가장 잘 살 신부를 우리 손으로 양성하자』는 것.
대전가대는 「불가능」이란 예상을 깨고 1995년 10월 개교 기념 신앙대회를 가졌다. 교구민들에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사연도 많고 곡절도 많아서일까, 올해 11년째를 맞는 대전가대에 대한 경주교의 관심과 사랑은 남다르다.
경주교는 서울 태생이고 서울에서 자랐고 대전교구장 부임 전까지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였다. 소위 「타지(他地)」 출신인 경주교가 20여년 동안 겪고 봐온 대전교구에 대한 느낌은 어떠할까. 그 대답이 재미있다.
『충청도 사람들은 속을 잘 드러내질 않아요. 그리고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도 길어. 처음엔 이런 점들 때문에 답답하기도 하고 어려움도 있었지. 그러나 한번 의견을 모으고 일치하게 되면 더 큰 저력을 발휘합니다. 마치 데워기지까지는 오래 걸려도 한번 데워지면 뜨거운 온돌방 구들장처럼』
대전가톨릭대학교 건립때의 일화. 총 260억원이 들어간 신학교 건립비용 가운데 각 본당 몫으로 120억원이 할당되었다. 그러나 시간은 걸렸을망정 한본당도 빠짐없이 할당된 전액이 모금됐다.
경주교는 대전교구 본당이 120억을 모았다는 것과 나머지 140억원을 모금해 신학교를 건립한 것, 이 두가지를 「기적같은 일」이라고 부른다. 경주교는 한번 뜻이 모아지면 저력을 발휘하는 대전교구민의 힘을 엿볼 수 있다며 자랑한다.
가정사목에 관심가져야
『그동안은 교구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갖추는 시기였다면 앞으론 이러한 외형을 바탕으로 내실을 기하는 시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수년 동안 「복음적인 가정공동체」를 주제로 사목교서를 발표한 바 있는 경주교는 특별히 교회가 가정을 지키고, 가정을 살리는 보루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정은 사회와 교회공동체의 기본 세포입니다. 세포가 병들면 육체도 허물어지듯이 가정이 병들면 사회도, 교회도 병들 수 밖에 없어요. 교황님께서 「가정은 인류의 미래」라고 강조하시고 가정사목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라고 권고하셨듯이 가정사목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2002년에 제정한 「대전교구 성가정 생명장학금」도 이러한 취지에서 비롯됐다. 주교성성 25주년 축하금 전액을 기부해 첫해 장학금을 수여했고, 지금은 경주교의 기부금과 독지가들의 헌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매년 모범 성가정에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경주교는 후임 유흥식 주교에 대해 『학식과 영성 모두 저 보다 뛰어난 훌륭하신 분』이라면서 『후임자로서 만족하고 믿는다』며 강한 신뢰를 나타냈다.
또 교구 사제단에게는 『전임 교구장들 보다 몇배로 도와주고 협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경주교는 『내가 부임할 당시에 지역 출신 교구장이 나오지 않은데 대해 불만도 있었고, 재임 중에도 후임자는 꼭 지역 출신 교구장이 나오기를 바라는 요청이 있었다』면서 『이제 유주교님이 오신 만큼 더 많이 밀어주고 지지하고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교구장 협조자로 지낼터
교구장 재임동안 아쉬움은 없었을까.
『사제가 될 사람들이 주교좌성당이 아닌 체육관에서 성품성사를 받는 모습이 늘 안타깝고 속상했다』는 경주교는 서품식이나 교구 큰 행사를 수용할 수 있는 주교좌성당을 건립하고자 했지만 안됐다며 아쉬워했다.
경주교는 퇴임 후 계획에 대해선 『직책에서야 은퇴가 있겠지만 성직에 무슨 은퇴가 있겠느냐』며 『마치 보좌주교처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유주교님을 도울 것이고, 유주교님께도 언제든 협조자로서 불러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 신학교 부제반을 대상으로 매주 1차례씩 영성강화를 할 계획이다. 사제로서 살아온 40여년의 삶을 되돌아보며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사제 영성 모임에도 가입하고 싶다』는 경주교는 『이래 저래 퇴임 전보다 더 바쁠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경주교는 퇴임 후 지방리 공소에 신축중인 특수사목 사제 숙소(제3 사제관)에서 함께 생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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