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문화에 대한 담론들이 흘러넘치고 있다. 아쉽게도 이러한 담론의 과잉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세계화와 연관지어 문화를 말하는 사람들은 기껏 문화산업이란 천박한 이해를 드러낸다. 전통 문화를 말하는 이들은 그저 문화활동의 결과물이나 문화재 정도를 문화로 취급한다. 현대 사회의 여러 현상을 문화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중소비문화, 또는 「세속화 된 문화」를 개탄하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순수함과 올바름이란 칼날을 세울 뿐이다.
문화를 영성과 연결시켜 논의하는 배경에는 이것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된 이해가 자리한다. 고대와 중세 이래 세계와 인간, 역사를 자연과 연관지어 해명하려는 자연철학에는 자연이야말로 인간의 근본 조건이며, 세계 이해를 위한 계시의 터전이란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인간이란 결국 자연 속에서 태어나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창조된 자연으로서 자연에서 창조 사업을 이끌어가는 존재란 말이다.
오늘날 인간이 자리한 존재론적 터전은 그때와 비교해서 분명히 달라졌다. 인간은 자연적 존재이며 생물학적 존재로 태어나지만, 동시에 문화적 존재로 태어나 문화적 존재로 살아간다. 문화는 고대와 중세 철학에서의 자연처럼 현대인이 마주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가 되었다. 그러기에 자연에 대한 고찰만큼이나 문화에 대한 해석은 인간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조건인 것이다. 인간은 물론이고 그의 삶과 역사, 인식과 가치의 체제는 문화를 떠나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인간은 생물학적 출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교육은 물론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한 문화 안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어 가는 존재이다. 또한 그를 통해 다시금 역사와 세계를 만들어 간다. 따라서 문화학은 현대의 문화현상을 분석하고 이에 대해 비판하고 해명하려는 작업이거나 또는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수용되는 체제일 수는 없다. 문화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기이해와 자기규정, 내일을 향해가는 자기실현이 담긴 근원적 터전이다. 그러기에 세계와 자연, 역사와 사회는 문화를 통한 인간의 자기이해와 자기실현의 과정에 따라 형성되며, 나아가 그렇게 해석된다.
그 안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미리 결단을 내리고 미래를 선취한다. 미래를 기획할 뿐 아니라 인격의 궁극적 완성과 그 이상의 어떤 가치를 향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이 초월이라면,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곧 초월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초월에 대한 열망없는 인간은 무의미한 존재일 것이다. 이제 문화는 삶을 초월적으로 정위시키는 행위에서 궁극적인 의미를 얻게 된다. 그 말은 문화가 자연과 대비하여 현대인의 영성이 이루어지는 바탕이란 의미이다.
문화란 말이 그 자체로 이런 사실을 드러낸다. 로마 시대 키케로는 문화의 어원인 경작과 대비하여 「정신의 문화를 철학」이라 정의했다.
「cultura」를 문화로 번역한 근대의 동아시아 학자들도 유교의 이상적 세계관을 나타내는 「文治敎化」란 말에서 이 단어를 이끌어왔다. 그 표현에는 성인의 가르침(文)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이끌어간다는 이상이 담겨있다. 또한 문(文)은 문(紋)을 뜻한다. 그것은 삶의 무늬와 결, 바로 우리 삶의 총체적인 모습을 말한다. 그러기에 삶을 떠난 영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늘날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영성은 문화란 터전과 그에 대한 이해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기에 초월에 대한 열망없는 문화는 맹목적이며, 문화에 터전하지 않는 영성은 공허할 뿐이다.
신승환(가톨릭대학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