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츠시마 주민에게 쥴리아는 살아있어
조선인 오타 쥴리아 3
도미니코회 하신토 살바네스 신부(복자)의 1620년 3월 25일 나가사키 발신 서한에 의하면 오타 쥴리아(大田 Julia)는 1619년에 나가사키에 있었다.
『요즈음 몇 명의 신심 깊은 동정녀들이 부교(나가사키의 水野河內 守를 말함) 앞에 끌려 왔습니다. 그것은 그녀들이 어린이들을 모아 교리를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조선 태생 쥴리아는 로사리오 기도를 대단히 좋아해서 「로사리오회」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문에 몇 번이나 자기의 집에서 쫓겨나와 지금은 집도 없이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하면서 집에서 집으로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다음 서한은 오사카에 있는 쥴리아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 1622년 2월 15일자 프란치스코 빠체코 신부(복자)의 서한 끝에 『조선인 쥴리아는 신앙으로 인하여 박해를 받아왔고 지금은 오사카에 있습니다. 나는 그녀를 도왔고 지금도 제 힘 닿는 대로 돕고 있습니다』라고 첨부되어 있다. 이 서한을 마지막으로 쥴리아에 대한 더 이상의 행적은 안타깝게도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한일 친선 쥴리아제
이국의 땅에서 일본 최고의 권력자 장군의 총애와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박해와 추방, 갖은 고생을 살아간 조선인 규수 쥴리아! 그녀의 행복은 무엇이었는가….
매년 5월 셋째 주일이 되면 약 400년 전 오타 쥴리아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1970년에 제1회로 시작하여 「한일 친선 쥴리아제」가 고츠시마의 오타 쥴리아의 조선 풍 묘탑(?)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25주년에 일본 동경대교구장 시라야나기 세이치(白柳誠一) 대주교의 축사 말씀 중 첫 머리만을 소개한다.
『오타 쥴리아의 유덕을 기리며 이와 같은 훌륭한 사람을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를 표하기 위하여 시작된 「쥴리아제」가 벌써 25주년을 맞이하기에 이르러 감회가 깊습니다』
현재 일본에는 오타 쥴리아에 대한 신심이 유난히 깊은 수녀가 있다. 그녀는 오사카의 성 요셉 수녀회의 고지마(小島) 이다. 이 수녀의 말을 빌리면 『지금 오타 쥴리아님이 계신다면 무엇을 원하실까? 그리하여 시간을 내어 고츠시마(神津島)에 날아가 섬 주민에게 오타 쥴리아가 믿고 있던 주님을 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가지 못할 때면 편지로 주고받으며 오타 쥴리아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하고 싶다는 것이 그 수녀의 바람이었다. 15세 때부터 병으로 누워만 있는 이에게 편지로 주고받은 내용을 신부에게 보여주고 허가를 받아 세례를 주기도 하고, 섬의 청소년이 도시에 나와 학교를 다닐 때, 그들이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인도하고 있다.
고츠시마의 사람들은 『쥴리아님이 믿고 있는 신은 절대 틀림이 없다』 『쥴리아님이 계신 곳에 가고 싶다』 『오타 쥴리아님을 생각하면 나는 푸른 하늘을 나르고 있다』 등등의 편지를 쓰고 있었다.
오타 쥴리아는 지금도 살아 있어 주님을 증거하며 참 생명과 행복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박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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