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먼저 초대했다’며 방한 받아들여
-김수환 추기경
『교황께서는 우리의 목자이자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자 우리와는 더할 수 없이 가까운 분이셨습니다. 큰 별을, 큰 빛을 잃은 애석함을 느낍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떠나보내는 마음을 이같이 표현하며 교황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했다.
김추기경은 4월 3일 오전 7시경 교황 선종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성당에서 추모기도를 봉헌했으며 선종소식이 전해진 지 6시간여 후인 오전 11시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 성신교정 본관에서 공식 인터뷰를 가졌다.
특히 김추기경은 『교황께서는 늘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평화를 가져온다」고 말씀하시고 실천하셨다』며 『우리도 그 모습처럼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 교황님에 대한 참된 추모』라고 말했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참으로 인간을 사랑하신 분』이라고 회고한 김추기경은 『그는 전세계 모든 이를 사랑으로 품어안고 이를 모든 이가 확인할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인 분』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추기경은 『그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 정의, 세계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교황의 가장 근본적인 관심사는 전 인류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황은 사회정의와 평화를 위해 오롯이 헌신하셨고, 세계 각 종단 대표들을 초대해 세계평화를 위한 공동노력을 펼치는데도 적극 힘쓰셨습니다』
이어 김추기경은 『교황께서는 지난 몇해 동안 건강악화로 많은 고생을 하셨다』며 『위독한 가운데서도 병원에 가지않고 당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르신 것은 마지막 고통까지도 예수의 수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또 김추기경은 『교황과 관련한 수많은 기억들을 한번에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선출 직후 처음으로 교황과 격없이 만난 자리에서 환담을 나누며 한국에 방문할 것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교황께서는 「당신이 나를 제일 먼저 초대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며 한국을 방문하셨다』고 회고했다.
김추기경은 한국교회 공식 조문단과 함께 6일경 로마로 출국해 조문할 예정이다. 그러나 김추기경은 연령제한으로 새 교황 선거권을 갖고 있진 않다.
〈주정아 기자〉stella@catholictimes.org
■"한국어 미사 연습하며 정성 쏟아"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대해 주변 모두가 감동을 느낄 만큼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셨으며 특히 우리말을 배우는데 큰 정성을 쏟으셨습니다』
장익 주교(주교회의 총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후 마련된 한국 주교회의 공식 기자회견 석상에서 교황에게 우리말을 가르친 기억을 되짚으며 당시의 깊은 감동을 전했다.
장주교는 『교황께서는 1984년 한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우리말을 배우시겠다고 해서 40여차례에 걸쳐 우리말 교습 시간을 마련해드렸다』며 『정기적인 지도는 못해드리고 수시로 바티칸에 들러 가르쳐드렸는데 그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절대 5분이상 기다리게 하지 않고 성실한 자세로 우리말을 배우셨다』고 말했다. 특히 『교황은 방한 시 한국어로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바티칸에서 17차례에 걸쳐 한국어로 미사를 봉헌하며 연습을 거듭하셨다』고 밝혔다.
『교황께서는 당시 「한국에 가면 모든 말을 한국어로 해야겠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아무래도 그것은 무리입니다」라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교황께서는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하는데까지는 해봐야하지 않나, 어떻게 한국에 가서 다른 나라 말을 하겠는가」라고 대답하실 정도로 한국사람들에 대한 깊은 배려를 보여주셨습니다. 타국가 수반들이 방한할 때 「안녕하십니까?」 정도의 우리말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정말 남다른 애정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교황은 당시 장주교를 「마이 프로페서(My Professor, 나의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부르곤했다고.
특히 장주교는 『교황은 우리나라 곳곳을 방문하고 청년, 노동자, 지식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때면 꼭 배경자료를 요청하셨다』며 『방대한 자료를 모두 훑어보고 각 장소와 대상에 따라 정성껏 답변을 준비하셨다』고 밝혔다.
『한 폴란드인이 교황에 대해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가까이 계신 분」이라는 글을 쓴 걸 봤는데 참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황은 진정으로 세계 모든 이들을 차별없이 감싸안아주신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holictimes.org
■"손은 떨렸지만 온화함으로 가득"
-한국가톨릭군종후원회 이관진 회장
『교황님은 그 존재 자체로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분이셨습니다.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따뜻했던 아버지같은 분을 잃은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난 199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대 그레고리오 교황 기사단장 훈장을 받은 바 있는 한국가톨릭군종후원회 이관진(베드로) 회장은 교황의 선종 소식에 남다른 애석함을 표했다.
교황이 위중하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온 가족과 함께 두 손을 모았다는 이회장은 이번에도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주님의 은총을 간구했다고 한다.
훈장을 서훈받은 후 바티칸으로 초대돼 교황을 알현하고 함께 미사를 봉헌하면서 요한 바오로 2세의 새 면모를 발견하기도 했다는 이회장은 「평화의 도구」라는 말로 교황을 추억했다.
『교황님은 누구보다 평화를 갈구하셨고, 몸소 사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평화를 필요로 하는 이 시대에 그 분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당시 떨리는 손으로 미사를 집전하면서도 온화함을 잃지 않았던 교황의 모습을 떠올리는 듯 잠시 눈망울이 흐려진 이회장의 얼굴에서는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나왔다.
『주님께서 그분을 데려가셨을 때는 다른 큰 뜻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 기대로 아쉬움을 달래며 그분께서 인류에게 남기신 소중한 뜻을 살려나갔으면 합니다』
끊임없는 성찰과 반성을 통해 인류를 화해와 평화로 초대한 교황을 닮아갔으면 좋겠다는 이회장, 그는 교황이 그랬듯 자신의 소망을 함께 나눌 이들이 불어나길 바라는 듯했다.
〈서상덕 기자〉 sang@catholictimes.org
■"따뜻한 가슴으로 새사제 끌어안아"
-교황 주례 서품식서 1984년 사제품받은 허영엽 신부
내 방에는 교황님과 내가 평화의 인사를 하는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교황님이 나를 인자롭게 보시고 내 어깨를 꼭 안고 계시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21년이 지났다. 1984년 교황님께서 우리나라를 방문하셨을 때 나는 대구에서 전국의 부제 37명과 함께 사제품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큰 행운과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려온다.
서품식이 있었던 날, 대구의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다. 서품식장으로 교황님께서 추기경님, 주교님들과 함께 입장하셨다. 교황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모든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교황님은 한국말로 미사를 시작하셨다. 드디어 서품식 중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를 위해 서품자들은 땅에 엎드렸다. 그런데 내가 엎드린 바로 앞에 교황님께서 무릎을 꿇으셨다. 교황님의 노래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그때 나는 교황님께서 노래를 잘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교황님이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를 하실 때 내 몸이 가볍게 떨렸다. 그리고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모든 새 사제들을 안아주셨다. 교황님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포옹해주셨다. 그때 기억에 교황님의 품이 아버지의 가슴처럼 따뜻했었다.
당시의 교황님은 강론 때마다 당신이 「평화의 사도」로 사목방문을 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실제로 교황님은 평화의 사도로 온 세상 곳곳을 방문하셨다. 말년에 교황님은 고령에다 지병으로 거동조차 불편한 몸을 이끄시고 계속해서 강행군을 하셨다. 특히 몇년전 교황님께서 중동 성지 방문을 하셨을 때는 세월의 무게에 눌린 구부정해진 어깨에 보기에도 안쓰러운 걸음으로 증오의 땅 곳곳을 찾아가 어루만져주셨다.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한 교황님은 3개의 그릇에 담긴 흙에 입을 맞추셨다. 이 그릇들은 기독교와 이슬람, 유다교 신자의 자녀 3명이 들고 있었다. 그분은 3개의 종교가 화합하여 발전하길 기원하는 희망을 담아 각각의 흙에 키스를 하셨다. 그리고 예수살렘의 통곡의 벽에서 교황님은 랍비가 하는 양식대로 기도를 하셨다. 가톨릭은 어떠한 종교이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신 장면이라 생각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남기시고 마지막 여행을 떠나셨다. 교황님을 그토록 괴롭히던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되셨다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넉넉하고 인자한 할아버지와 같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오랫동안 못내 그리울 것 같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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