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둠 밝히는 큰별 지다”
김추기경 주례, 한국주교단 공동집전
외교사절단 타종교대표 등 함께 애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추모 열기가 갈수록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교회는 4월 5일 오후 6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추모하는 공식 장엄미사를 거행했다.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한국 주교단 30명이 공동집전한 공식 미사에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를 비롯해 각국 외교사절단과 타종교 대표자, 사회각계인사 등 1만여명의 대인원이 참례해 한마음으로 교황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추모강론을 통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인간으로서, 종교지도자로서, 이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로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큰별, 참된 의미의 「스타」셨다』며 『인간존중, 특히 신앙자유의 존중, 사회정의구현과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하신 교황의 생애와 인품은 돌아가신 지금에 더욱 빛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추기경은 또한 『교황께서는 거의 모든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는 인간이 죽기까지 따라야할 길」임을 강조하셨다』며 『교황의 바람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을 살 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사 중에는 주한교황대사 에밀 폴 체릭 대주교와 남녀수도자 대표 김선호 수사, 한국 평신도 대표 손병두 평협회장의 추도사가 마련됐다.
특히 남녀수도자들은 교황의 영원한 안식을 기리는 마음을 「하늘 호수에 묻힌 석양」을 제목으로 한 한편의 시로 엮어 참례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1만명 대규모 인파 모여
⊙… 이날 명동성당에는 한국교회 역사상 이례적으로 1만여명의 대규모 인파가 모여들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애틋한 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미사가 시작되기 3시간여 전부터 각지에서 모여든 신자들은 명동본당 대성당과 소성당은 물론 문화관과 앞마당을 포함해 명동거리에 이르는 성당 들머리까지 가득 채우고 어두움과 쌀쌀한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엄숙한 가운데 야외미사를 봉헌했다.
나들이 대신 추모미사 참례
⊙… 또 식목일 공휴일을 맞아 온가족이 함께 교황에 대한 애도를 표하며 나들이 대신 미사에 참례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자녀와 함께 미사에 참례한 김태욱(베르나르도.서울 돈암동본당)-이정미(소피아)씨 부부는 『지난 1984년 한국을 방문한 교황이 땅에 입맞추며 「순교자의 땅」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신앙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고 세례를 받았다』며 『늘 우리 가족들에게 묵상거리를 제공해주며 신앙의 인도자로 도움을 주신 교황님께서 하느님 품안에서 더욱 기쁘게 지내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외교사절단.타종교대표도
⊙… 교회 내 뿐 아니라 타종교와 사회안팎에서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해 큰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이날 미사에는 각국 주한 외교사절단 100여명과 대한불교조계종, 원불교, 성균관, 천도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등 타종단 대표를 비롯해 한국기독교협의회, 기독교장로교, 구세군, 성공회, 정교회, 루터회 등 각 그리스도교 대표 20여명이 참례해 교황을 추모했다. 또 김대중 전대통령과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등 사회 각계인사들도 교황 추모에 한뜻을 모았다.
생전의 모습 사진에 담아
⊙… 명동성당 앞마당에서는 사진을 통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을 다시 만나는 전시회를 펼쳐 일반인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동양인으로서 특히 생존작가로서는 바티칸에서 처음 사진전을 연 바 있는 중견작가 백남식씨가 1993년부터 교황의 다양한 행적들을 담은 사진 30점을 전시했다.
아울러 가톨릭대 신학생들과 명동본당 신자 200여명은 명동성당과 인근에 모여든 신자들을 안내하고 장내를 정리하는데 소리없이 힘쓰는 모습을 보였다.
■-교황대사 에밀 폴 체릭 대주교 추도사(요지)-
"자유로운 영혼으로 하느님 사랑 드러내"
모든 인간의 죽음은 큰 슬픔과 아픔을 남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죽음의 신비는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 26)고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 새겨져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바로 이러한 신앙으로 일생을 걸어오셨고, 사제로서, 또 교황으로서 이 신앙을 교회와 세상에 전파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바로 이 신앙으로 깨달음과 힘을 얻어 당신 삶의 시련과 고통, 수많은 도전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고통받는 이들, 병자들, 노인들, 장애인들과 깊은 인간적 유대를 나누셨던 성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 생명의 존엄과 거룩함과 불가침성을 몸소 증언하셨습니다.
교황께서는 당신이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느님과 이렇게 특별한 관계를 맺으신 덕분에 그분은 자유로운 인간, 인간적 두려움과 편견에서 해방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말씀을 듣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두려워 마십시오』라고 촉구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그들의 삶 안에 그리고 인간의 역사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또 그분은 사람들에게 자주 『용기를 내십시오』하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께서는 세계의 지도자들, 다른 종교와 교회, 교회 공동체들의 수장 등과 만나 참된 인류 발전과 빈곤 퇴치를 위해 협력하라고 격려하셨습니다. 또 모든 사람을 위한 정의가 다스리는 더욱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회 있을 때마다 민족들과 나라들 사이의 평화와 이해를 증진하고자 하셨습니다.
교황께서는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 그리고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다정한 사랑을 예언자적으로 보여주신 징표였습니다. 교회와 세상에 카롤 보이티와를 보내주셨던 주님의 자비하심에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그분의 영혼이 우리 주님의 평화 안에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