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벗’으로 두 차례 방한
103위 시성 기적심사 관면
남북 화해일치에 깊은 관심
『벗이 있어 먼 데로 찾아가면 그야말로 큰 기쁨이 아닌가』
1984년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을 맞아 방한한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여의도 광장에서 봉헌된 103위 시성식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민들에게 건넨 인사말 중 일부다. 논어의 「학이가」를 응용한 이 말에서 보듯 교황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한국교회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재임 중 두 번이나 한국을 방문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관심을 드러냈다.
1984년 첫 번째 방한
84년 첫 방문때, 교황은 비행기에서 내려서자마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이라고 하면서 땅에 입을 맞췄다. 또 한국을 『유구한 역사에 걸쳐 시련과 풍파를 이겨내고 새로이 일어설 줄 아는 생명과 젊음이 넘치는 아름다운 나라』라고 격려하고, 한국교회에 대해선 『무수한 순교자들의 피가 씨앗이 되어 자라난 교회』라고 평하며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표시했다. 방한전 결정된 103위 시성건도 교황의 결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성절차 중 기적심사 부문에 문제가 있었던 것.
『혼란한 박해시대에 무슨 기록이나 증언이 남아있어 기적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기적보고 관면 청원서를 교황님께 직접 올렸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말이다. 김추기경은 청원서를 통해 『100년에 걸친 박해 잿더미속에서 교회가 다시 일어서고, 복음이 퍼져나가 한해 성인 영세자가 10만명에 달하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교황께 말씀 드렸다 한다. 이에 교황은 이러한 영적 기적을 인정하시고 기적심사를 면제해 주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런 교황의 배려가 없었다면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한국땅에서, 그것도 한번에 103위 성인으로 선포하는 영예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1989년 두 번째 방한
이어 1989년 10월, 교황의 두 번째 방한. 한국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때였다. 교황은 이때도 도착 성명을 통해 『몇해 동안 늘 지난번 방문(84년)의 행복하고 고무적인 기억들이 그리웠다. 오랜 전통을 가진 나라의 삶과 소망과 깊은 정신적 동경들을 다시 나누고자 본인을 반기는 한국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며 방문의 기쁨을 표출했다.
세계성체대회도 사실 교황청의 강권(?)으로 이뤄진 것. 85년말 사도좌 정기방문으로 바티칸을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에게 당시 톰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이 느닷없이 『교황청에서 89년 세계성체대회 개최지를 논의했는데 의견이 서울로 좁혀졌다』는 말을 건네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황을 비롯한 여러 교황청 인사들이 200주년 기념대회를 훌륭하게 치러낸 한국교회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교황은 이때 한국방문을 위해 장익 주교(현 춘천교구장)로부터 한국어를 40여차례나 배울 정도였다고.
교황의 해외 순방때마다 동행하는 수행팀원들이 선정한 「아름다운 나라(행사) 베스트 3」에서 1위는 교황께서 취임 직후 방문한 교황의 조국 폴란드이며, 2위는 84년 한국 200주년 신앙대회, 3위는 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라고 전해진다. 교황청과 한국교회의 우호적이며 밀접한 관계를 상징하는 말이다.
북한에 대한 관심
교황은 한반도의 통일과 북한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1995년 대홍수로 고통을 겪던 북한에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교황청 대표단을 파견한(96년 1월) 교황은 이들을 통해 「상징적인 지원금」을 북에 전달했으며, 2000년에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와 함께 북한을 방문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교황은 또 북한과의 지속적인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으며 최근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주관하는 「한끼 굶으며 북한동포를 돕자」라는 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이와함께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도 『통일 의지를 포함한 한국내 여러 정치적 변화들은 반드시 인권옹호 사상을 바탕에 두고 시행되길』이나, 『한국 지도자들이 진정한 정의와 자유, 인권존중에 바탕을 둔 민족통일을 향해 평화롭고 의로운 길을 모색해 주길』 등의 당부의 말로 관심을 표명해 왔다. 또한 선교 기도 지향을 「한반도의 민족 화해와 일치」로 정하고 『교회와 다른 교회 공동체들의 기여를 통하여 성령께서 한반도의 두 나라가 반드시 화해해야하는 이유를 다시 찾게 도와주시도록 기도하자』고 당부한 적도 있다.
1998년 명동대성당 축성 100주년을 맞아 「대성당은 서울대교구민의 영적, 전례 생활의 중심이며, 살아있는 들보」라는 축복의 전문을 보내오기도 한 교황은 한국가두선교단 등 많은 국내 교회기관과 단체에게 강복장을 수여했다. 또한 2000년 남북정상회담때는 「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특별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태풍 루사(2002년)로 실의에 빠진 한국민들에게 「고통을 함께 슬퍼한다. 용기를 내 다시 일어서기를 기원한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오는 등 한국민들의 고통에 동참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전에 한국인을 만나면 『감사합니다』 『찬미 예수님』 등 한국말을 할 정도로 한국과 한국교회를 사랑한 교황. 한복을 무척이나 좋아한 교황은 평화의 수호자로 정신적 지도자로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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