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구도자 정체성 회복해야”
우리 대학교육이 위기이다. 부정, 비리, 질 낮은 교육, 그리고 졸업과 함께 청년실업으로 이어지는 대학교육의 현실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대학교육에 대한 불신을 낳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2004년도 초중고생의 조기 유학은 「서울지역에서만」 사상 최대인 1만 2317명으로, 하루에 34명꼴이다. 이중 부모의 해외근무나 이민에 따른 출국을 제외하고 순수 유학 목적으로 해외로 간 학생들은 5928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무려 34%나 늘어났다(동아일보 2005년 3월 30일).
주의해서 볼 것은 이토록 급증하는 조기유학 열풍에는 대학교육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한국의 사교육비 규모는 14조원 정도이며, 이중 상당한 규모는 장단기적 대학입시 준비를 위한 투자이다. 그런데 엄청난 사교육비를 투자하고 어렵사리 입학한 한국 대학교육의 국제경쟁력은 세계 60개국 중 59위이다(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조사). 기절초풍할 지경이다.
그러니 『아이 교육이요? 솔직히 욕심나죠』하는 광고처럼 자녀교육을 위해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는 부모들의 출한국(出韓國) 시도를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다.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난 사교육비에 허리 휘고, 아이를 국내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아등바등하게 만드느니, 해외로 보내서 유수한 외국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조기유학이 낫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렇듯, 대학교육의 부실이 국민들의 불신을 낳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올바른 대학의 모습은 무엇일까? 다음은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령 「가톨릭대학교」(ex corde ecclesiae, 1990)를 기초로 한 것이다.
오늘날 대학교육의 위기는 대학의 정체성 상실에 있다. 바꿔 말하면 대학 본연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대학(university)이란 본래 「스승과 학생, 즉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의 세계 혹은 공동체」(universitas magistroum et scholarium)이다. 그러므로 대학의 정체성은 자신이 진리, 특별히 불변의 진리를 탐구하는 존재라는 점에 근거한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대학이 상대주의와 시장주의 영향으로 취업과 사업에 유리한 「대학의 학원화」 「대학의 기업화」 정책을 유지한다면, 대학의 위기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대학의 경쟁력은 공과대학에서 나사 빨리 조이는 기술이 좋은 학생을 배출하는 데에서 비롯하지 않고 창의력과 인류애로 가슴이 뜨거운 인재들을 배출할 때 생기는 것이다. 우리대학들은 다시 원천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학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교수와 학생들은 「진지하고 성실한 진리의 구도자」 자세를 갖추고 불변하는 진리탐구의 긴 여정에 나서야 한다.
대학교육을 위한 두 번째 가톨릭적 제안은 교육과정이 보다 보편적 인본주의, 혹은 가톨릭적 인본주의와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이란 「보편적」이란 뜻이다. 가톨릭 인본주의란 인류지고의 가치들인 사랑, 용서, 관용, 인내, 친절, 환대 같은 것이다. 이런 가치들을 대학 교육과정 안에 통합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에서는 소수민족, 저개발국가, 경제적 약자의 경제문제에 집중하고, 또 심리학에서는 가난, 가족해체, 고아, 노동자와 같은 가난하고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문제를 다룸으로써 우리 대학의 학문들이 인류의 문제에 동참할 수 있다.
우리 대학이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면 그 출발은 대학의 본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학문이 취업을 위한 상대적 진리의 전파자에서 보편적인 가치들을 실현하는 임무를 수행할 때 참다운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길이라 생각한다.
최준규 신부(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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