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목자여, 고이 가소서”
고인에 대한 추모열기 서울의 수만배
“미사내내 성인반열에 오르도록 기도”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마지막 말씀이시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토마스 리스 신부가 쓴 「인사이드 바티칸」을 읽었다. 교황님의 일상생활과 사도로서의 삶을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8일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몹시 긴장되었다. 이런 역사적 현장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오전 9시 전에 베드로 대성당에 도착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국가원수들과 고위 지도자들, 이웃종교의 고위지도자들, 400만이 넘게 운집한 추모인파는 서울에서 느낀 추모 열기의 수만 배가 되는 듯하였다. 어느 정치지도자, 어느 종교지도자가 이러한 추모를 받을 수 있겠는가.
제대 좌우 연단에 고위성직자석과 VIP석으로 나누어 있었는데, 단원 중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연단 아래 제대 앞쪽으로 마련된 일반석으로 안내됐다. 주변에는 폴란드에서 온 사람들이 국기를 흔들며 교황님을 소리 높여 환호하는 바람에 다소 분심은 들었어도 그분들의 뜨거운 사랑의 열기를 느끼며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사가 시작되고 교황님의 관이 운구되어 제대 앞에 놓여질 때 내 가슴은 다시 슬픔으로 가득 채워졌다. 1984년 한국에 오셨을 때 나는 미국에 유학중이어서 뵈올 수 없었고, 1989년에 오셨을 때는 여의도광장 한 구석에서 멀리 교황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없었던 교황님을 돌아가신 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심정은 애석하고 불효자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라칭거 추기경의 이탈리아어 강론을 나중에 영어로 읽어보고는 참으로 훌륭한 강론임을 알게 됐다. 그는 교황님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나를 따르라」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사신 분이셨고 생애의 고비마다 바로 이 말씀으로 결단하셨음을 추모하셨다.
그리고 9살에 어머니를 여읜 교황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제자에게 어머니를 돌보라고 부탁하신 말씀대로, 성모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음을 상기하면서 교황님을 성모님께서 주님이신 아들 예수님께로 잘 인도해주십사는 기도로 끝맺고 있었다.
나 역시 9살에 어머니를 잃고 성모님을 어머니로 의지해 살아왔던 터라 성모님에 대한 신심에 공감하고 새로운 감동을 받았다. 미사 내내 교황님께서 성인반열에 오르도록 기도하였다. 그리고 교황님께서 우리나라와 민족을 그렇게 사랑해주셨고 특히 북한 종교의 자유와 선교를 그토록 원하셨는데 천국에 가셔서 그 소망이 꼭 이루어지도록 전구해 주십사 기도드렸다.
장엄한 합창단의 애도찬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동방가톨릭 성직자들의 그리스어 기도가 끝나자 교황님의 관은 서서히 운구되어 베드로 대성당 입구 자색 커튼이 드리운 사이로 모습이 사라졌다.
내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어지신 어버이요, 참된 목자이신 교황님을 더 이상 뵐 수 없고 그분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슬픔과 허전함이 마음속으로부터 북받쳐 올랐다.
오늘 우리의 이 슬픔은 이제 새로운 희망으로 변할 것이다. 새롭게 선출될 교황님이 그분의 뒤를 이어 새천년을 이끌어 갈 참된 목자로서 우리 교회의 초석을 놓으시리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 교황님이시여, 천국으로 고이 가십시오. 그동안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부디 가셔서 저희들을 잊지 마시옵소서. 저희들은 행복합니다.
손병두 <요한 보스코.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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