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하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양을 하나 하나 이름을 부르시면서 불러내어 인도하시는 까닭에 양들은 다른 사람은 따르지 않고 당신만을 따른다고 말씀하신다.
당신은 품꾼들과는 다르게 이리가 양들을 공격해올 경우에는 목숨을 걸고 이리를 격퇴시킨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의 성서구절이 나오는 부활 제4주일을 예전에는 착한 목자 주일로 불렀고, 예수님을 닮은 선한 성직자 수도자가 많이 배출되도록 기도하면서 청소년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많이 응답하도록 하기 위해 각 수도원과 신학교를 개방하고 여러가지 행사를 하는 성소주일로 정하고 있다.
교우들은 지식과 명석한 두뇌를 가진 목자보다는 누구나 차별없이 보듬어 주고 감싸주는 따뜻한 가슴을 지닌 목자를 선호한다. 그렇기에 인사이동 때가 가까워지면 우리 본당에 어느 분이 오시게 될까가 최대의 관심사가 되고 열심하고 사랑이 많은 분을 맞게 되면 우리본당은 축복을 받았다고 하고 그렇지 못하면 벌받았다고들 하지 않는가?
자식을 낳아 키우는 부모님의 사랑을 보면 당신의 양떼에게 쏟으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연상할 수 있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고싶고 무엇이든지 다 주고 싶고 어떤 때는 무모한 짓 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사랑이 지극하면 수고도 모르고 더러운줄도 모른다. 엄마들은 다른집 아기들의 똥은 더럽다고 하면서도 자기 자식의 똥기저귀는 마구 주물러 빨지 않는가? 다른집 아기들이 밥을 먹다 흘리면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자기 아기 입언저리에 붙어있는 코와 침이 묻어있는 음식물은 떼어먹지 않는가?
자식이 성장하여 독립할 때까지 부모님들의 사랑과 정성과 수고와 투자는 엄청난 것이지만 부모님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보람마저 느끼고 있지 않은가? 사랑이 크면 수지타산을 할 줄 모른다. 100마리의 양을 키우던 목자가 한마리의 양을 잃었을 때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버려둔채 찾는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길잃은 한마리 양을 찾으러 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 다행히도 그 양을 찾았기에 망정이지 찾지도 못하고 게다가 길에 방치해 놓은 아흔아홉마리의 양떼마저 누가 몰고 갔더라면 어찌할뻔했나.
내가 잘 아는 어느 자매가 키우던 애완견이 새끼를 배었는데 너무 늙어서 새끼를 낳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의료보험 혜택도 못받는 개를 가축병원에 입원시켜 제왕절개 수술을 해 새끼를 분만시키고 완치될 때까지 병원에 입원시키고 매일 병문안을 가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그 병원에 들어간 돈으로 애완견을 샀더라면 그보다 더 예쁜 개를 여러마리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사제가 되기전에 얼마동안 양계를 해본적이 있는데 양계를 하다보니 내가 키우는 닭들에게 애정이 가게되고 애정이 가다보니 닭똥을 막 주물러도 더럽지도 않고 냄새도 역하지 않았다. 사랑의 힘은 그렇게도 위대한 것이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분은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체구도 왜소하고 쭈글쭈글한 할머니에 불과했지만 그 작은 가슴속에 엄청난 사랑을 지녔던 까닭에 인도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분을 인도 국민의 어머니로 부르게 되었고 그분이 돌아가시자 인도 정부는 국장을 치러드리지 않았던가.
아이들은 잘 놀다가도 아프거나 배가 고프거나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엄마를 부르거나 찾아간다. 그러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된다. 우리도 어느누구나 그렇게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찾아가서 응석도 부리고 때로는 울기도 하고 생떼도 쓸 수 있는 부모 역할을 하는 선한 목자들이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물질의 풍요속에서 환락문화에 젖어있는 젊은이들은 결혼을 아예 기피하거나, 하더라도 자녀를 하나나 둘만 낳으려는 풍조에 빠져 인성교육이나 신앙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 또는 둘뿐인 자녀를 성직자나 수도자로 봉헌하기를 더욱 꺼리는 관계로 신학교나 수도원을 지망하는 비율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하다고 한탄하시면서 추수 주인에게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기를 당부하신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기도하면서 성소계발에 힘을 기울여야 되겠고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셨고 아브라함도 외아들인 이사악을 하느님께 봉헌했으니 우리의 외아들이나 외동딸을 주님의 목장에서 일하도록 하느님께 봉헌들 하시기 바란다.
허성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상담〉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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