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들어와서…형이 확정돼 집회에 나갔을 때, 고백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모셨을 때,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고백을 다 마쳤을 때, 신부님께서 제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해주실 때의 느낌, 따뜻함, 포근함. 그 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손이 따뜻하지…눈물까지 흘리시며 기도해주시고 사죄경을 읊어주시는 모습에 마음이 떨리고 두려웠고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제 죄를 저보다도 더 아파하시는 신부님에게서 예수님의 고통을 느꼈다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간직한 채 미사에 참여했는데, 처음이라 낯설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고…시작성가를 부르는데 그만 감정의 끈을 놓치고 말았었죠. 모든 근심, 걱정, 두려움, 온갖 생각들을 꼭꼭 감추었는데, 갑자기 목이 메어지면서 가슴이 저려오고 결국에는 눈까지 뜨거워지는데…그때 휴지를 건네주시는 신부님의 손길. 어둠과 적막, 두려움과 공포 속에 웅크리고 있던 저에게는 신부님의 손길이 빛이었고 안식처였습니다. 그 때 그 순간들은 아마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신부님께 꼭 하고픈 말이 있어요. 이 편지를 쓰게 된 동기중 하나가 이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현재 사형수로 살고 있는 형제의 편지다. 어릴 때 세례를 받았지만 오랜 냉담 기간에 엄청난 범죄를 저질러 돌아온 탕아처럼 심신이 황폐해지고 절망과 좌절 속에서 다시 하느님께 돌아온 형제다. 형제를 처음 만났을 때 나 역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해성사를 볼 때 편지지에 자신의 죄를 꼼꼼하게 적어와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던 모습은 엄청난 죄를 지은 살인자가 아니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불쌍한 영혼이었다. 고백을 마쳤을 때 편지지를 받아서 그 자리에서 박박 찢어버렸다. 그리고 그 형제를 포옹해주면서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해주었다. 이 형제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지만 일반 수용자들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기쁘게 살고 있다.
대부분 사형수들은 사형이 확정되고 나서 신앙을 갖게 된다.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 절망 속에서 희망 없는 삶을 살다가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사랑에 힘입어 신앙을 접하게 되고 그 신앙의 힘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교정사목위원회는 새롭게 태어나 변화된 삶의 모습을 가까이 지켜보고 집행현장에도 함께 하면서 사형제도의 부당함을 몸으로 느끼고 사형제도폐지를 외치고 있다.
현재 국회의원 175명이 사형폐지에 찬성을 하고 폐지법안이 법사위에 상정된 상태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4월20일 국회에서 사형제도폐지를 촉구하는 결의대회가 열린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형수의 생명까지도 존중되는 사회, 그래서 모든 사람의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마음으로 개최하는 이 대회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
-이영우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